교육에 관하여

[스크랩] [포커스] 세계 갑부들의 돈 안드는 자녀교육법

루지에나 2010. 12. 28. 05:38
[포커스] 세계 갑부들의 돈 안드는 자녀교육법
빌 게이츠, “컴퓨터보다 책을 먼저”
록 펠러, “허튼 데 돈 쓰지 마라”
워런 버핏, “아버지의 재산에 신경 쓰지 말 것”
샘 월턴, “벌수록 절약하라”
리카싱, “젊어 고생은 인생의 자양분”
▲ 샘 월턴이 생전에 손수 몰던 픽업트럭. (photo 방현철 기자)

샘 월턴 “절약의 가치를 배워라”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월마트의 창업주 샘 월턴의 가족은 세계 최고의 갑부 가족이다. 경제잡지 포브스가 집계한 2007년 억만장자 순위에서 20위권에 아들, 며느리 등 5명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월마트 본사는 미국 아칸소주 벤턴빌에 있다. 벤턴빌은 지도에서 찾기조차 어려운 촌구석이다. 월마트는 본사가 벤턴빌에 있는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대도시는 사무실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본사 건물은 창고를 개조해서 쓴다.


월마트의 절약정신은 샘 월턴이 심어놓은 것이다. 그의 절약정신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벤턴빌에 있는 월마트 방문센터이다. 방문센터엔 생전에 그가 손수 몰던 픽업트럭이 전시돼 있다. 붉은색 트럭 좌우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트는 가죽이 아닌 천이다. ‘과연 이 트럭이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 총수가 타던 전용차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샘 월턴은 픽업트럭을 탄 이유를 “롤스로이스 같은 고급 승용차엔 개를 데리고 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샘 월턴은 절약정신을 부모에게서 배웠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부모님의 돈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두 분은 아예 돈을 쓰지 않았다”고 적었다.


샘 월턴은 자녀에게도 절약의 가치를 물려주려고 노력했다. 자녀들이 가게에 나와 일하게 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 용돈을 줬는데, 용돈 액수는 친구들이 받는 것보다 적었다. 현재 월마트의 회장은 샘 월턴의 장남인 롭 월턴이다. 롭 월턴의 사무실은 가로·세로 약 3m의 정사각형 모양이다. 큰 책상 하나 들어가면 사무실이 꽉 찰 정도다. 월마트 간부들 사무실 중에선 가장 작다. 출입문 외에는 사방이 막혀 있고 창문도 없다. 아버지의 절약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 리카싱 (photo 로이터)

리카싱 “세상사의 어려움을 깨달아라”


홍콩의 재벌인 리카싱은 동아시아 최고의 갑부다. 그는 두 아들을 마치 사자가 어린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듯 독하게 키운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리카싱은 스물 두 살이던 1950년에 플라스틱제품 생산업체인 청쿵실업을 세워 1972년 홍콩 증시에 1호 기업으로 상장시켰다. 리카싱은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청쿵실업의 이사회를 참관하도록 했다. 둘은 회의실 구석에 놓인 어린이용 의자에 앉아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청쿵실업 이사회는 회장의 말에 그대로 동의하는 거수기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선 서로 얼굴을 붉히며 자기가 옳다는 주장을 했다. 하루는 이사회에 들어온 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논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서로 싸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리카싱은 “울지 마라. 논쟁을 하는 것은 사업을 위한 것이다. 사리는 논쟁을 하지 않으면 명확해지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리카싱이 아이들을 이사회에 나오게 한 이유는 후계를 위한 게 아니었다.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체험교육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훗날 한 이사가 대학교를 졸업한 리카싱의 아들들을 이사회에 참석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가 리카싱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어린아이들을 이사회에 참관시킨 것은 교육의 목적이지만 장성한 아들을 참석시키면 후계자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리카싱은 두 아들을 열 다섯 살에 미국과 캐나다로 유학 보냈다. 공교롭게도 그 나이는 리카싱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가족의 생계를 떠맡은 나이와 같다. 두 아들은 홍콩 갑부집 자식이었지만 자전거로 통학하고 골프장 캐디 등을 하면서 용돈을 버는 등 고생을 하며 유학해야 했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인생과 사업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는 게 리카싱의 생각이었다.
 


▲ 게티센터에 있는 폴 게티의 흉상. (photo 방현철 기자)

폴 게티  “노동의 중요성을 터득하라”


폴 게티는 한국인에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갑부지만 미국인에겐 친숙하다. 1957년 미국 잡지 포춘(Fortune)이 미국의 400대 부자 순위를 처음 발표했을 때 1위에 오른 부자다.


1960~1970년대 미국 최고의 갑부라고 하면 폴 게티를 가리킨다. 미국 서부 최대의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의 ‘게티센터’가 그가 남긴 유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폴 게티의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유전 개발로 많은 돈을 번 사업가였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을 부잣집 아들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돈은 스스로 일을 해서 버는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주려고 했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각종 심부름을 하면서 용돈을 벌게 했다.


폴 게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회사의 유전지대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만약 네가 바닥에서부터 일하고 싶다면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래서 얻은 게 유정 뚫는 일을 보조하는 육체노동이었다. 폴 게티는 당시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일당 3달러를 받았다. 이는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폴 게티는 노동자들과 합숙소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같은 밥을 먹었다.


폴 게티는 대학을 마친 후에 아버지의 권유로 유전사업에 뛰어들었다. 폴 게티는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제대로 흡수했다. 그는 ‘아침형 인간’으로 하루에 16~18시간씩 일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나”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라”고 조언했다.


폴 게티가 밑바닥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노동의 중요성’은 그가 아들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해주려고 한 메시지다. 폴 게티는 아들들이 장성한 후에 자신의 회사 주유소에서 일하게 하는 등 육체노동을 시킨 후에 사무실 일을 보도록 했다.
 


▲ 조앤 롤링 (photo AP)

조앤 롤링 “위기를 극복할 의지를 키워라”


‘해리 포터’ 시리즈로 돈방석에 앉게 된 조앤 롤링(필명 J.K.롤링)은 10년 전만 해도 먹고살 길이 막막한 싱글맘이었다. 일주일에 19파운드(약 13만원)씩 영국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아 생활했다. 그녀의 삶은 1997년 ‘해리 포터’ 1편이 나오면서 180도 바뀌게 된다. 인세 수입이 눈덩이처럼 굴러들어왔다. 올해 7월 7편이 나오자 출시 첫날에만 인세로 4360만달러(약 414억원)를 벌어들였다. 책을 써서 억만장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건 조앤 롤링이 처음이었다.


조앤 롤링이 인생의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세계 갑부가 된 데는 부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부모는 조앤 롤링에게 글쓰기 ‘재능’과 삶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의지’라는 두 개의 무기를 쥐어줬다. 특히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의 의연한 모습은 훗날 조앤 롤링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는 조앤 롤링이 열 세 살 되던 해에 손이 심하게 떨리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2년 후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불치병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10년 후 세상을 떠났다. 병에 걸렸다고 병원에 누워 버릴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일을 더 하려고 했고 농담도 쉬지 않았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이웃 교회에 나가 청소를 도맡아했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에 봉사활동에 나섰다. 어머니에게 감사한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1편을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바친다고 썼다.



/ 방현철 기자 banghc@chosun.com

출처 : [포커스] 세계 갑부들의 돈 안드는 자녀교육법
글쓴이 : 풍수(風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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