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하여
교육강국으로 부상한 핀란드의 교훈
루지에나
2011. 2. 8. 10:30
경제강국에 걸맞은 교육강국의 지위가 필요한 우리나라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교육강국의 지표로 삼아 볼 수 있는 것이 중등교육의 학업성취도 같은 것인데, 핀란드와 견주면 2% 부족한 실정이다. 국제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결과에서 보았듯이 핀란드는 우리보다 늘 한 수 위다. 우리의 교수 학습 방법이 저들보다 열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교육철학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역시 80년대만 하더라도 교육경쟁력이 한참 뒤지는 나라였다. 핀란드를 학습 결손 국가로까지 부르던 영국 프랑스 스웨덴 미국 같은 나라들이 이제 핀란드의 교육력에 놀라고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교육은 핀란드에 모방과 흉내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이 핀란드 교육을 눈여겨 보는 중이다.
우리나라 교육 관리들도 핀란드의 교육을 유심히 관찰하는 모양이지만, 우리 공교육에 핀란드의 교육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옳지 않다. 우리나라의 인구 밀도나 문화적 감각, 교육에 대한 국민적 기대들이 상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구는 저들보다 10배가량 더 많다. 인구 밀도도 30배가량이나 차이가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핀란드의 교육과 1대1로 비교하는 것은 피차 불편하다. 그렇다고 핀란드에 본받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가 저들의 교육혁신을 위해 한때는 미국 교육을 전거로 삼아 자신의 교육을 탈바꿈시켰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핀란드는 교육을 이해하는 감각이 전반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중등교육을 인체의 허리에 비유하곤 한다. 허리가 튼튼해야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다는 식으로 튼튼한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철학의 전통이 미국 교육문화의 좋은 점이다. 튼튼한 몸과 마음을 위해 성적은 그저 그 옛날 신사처럼 C학점이면 충분하다는 여유 교육 역시 바람직했지만, 옛 소련이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리자 미국은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교육 과정을 바꾸고 교사 교육도 강화했지만, 중등교육이 기대 이상으로 수월성을 회복하지는 않았다. 대학의 경쟁력만큼은 세계 최고인 미국으로서는 세계에서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중등교육과 대학교육 간의 괴리에 견딜 수 없었다. 미국은 중등교육의 혁신을 위해 선택과 경쟁의 기업철학으로 중등교육의 돌파구로 삼았다. 대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선택과 집중으로 중등교육을 혁신하였지만 성과는 요원한 현재일 뿐이다.
핀란드는 미국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미국식 선택과 경쟁이라는 논리 대신 분배와 협력, 자율을 중등교육의 철학으로 삼았다. 미국은 학교혁신을 기업혁신으로 응용했지만, 핀란드는 교육혁신을 국신(國身) 키우기로 비유했다. 핀란드는 교육을 국가의 몸으로 간주했다. 기업은 기업 이윤을 위해 특정 제품이나 업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이윤을 내줄 몇 가지를 선택, 그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해야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난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들어맞으면 이윤의 극대화도 따라 붙지만, 실패하면 해당 기업은 투자 규모에 상관없이 죽는 수 밖에 없다.
핀란드에 교육은 국가라는 몸이었다. 몸에서 심장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심장만을 선택하여 그것을 강력하게 만들거나, 발이 중요하다고 발만을 집중적으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키우면 그 몸은 끝내 신체장애, 불구가 될 뿐이다. 균형이 깨진 몸으로는 사람 구실도, 나라 구실도 불가능하다. 어느 누구의 몸이든 균형적 발달과 성장이 필요하다. 교육도 몸처럼 균형적으로 성장시켜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핀란드의 교육철학이었다.
선택과 집중은 `돈`이라는 기업 이윤을 염두에 두지만, 분배와 협력,그리고 자율은 돈이라는 글자를 뒤집어 놓은 `굳(GOOD)`이라는 국가이익을 우선한다. 핀란드는 영재라는 소수의 이윤보다는 학생 모두가 인재라는 국가이익을 택했기에 교육강국이 된 것이다.
핀란드 역시 80년대만 하더라도 교육경쟁력이 한참 뒤지는 나라였다. 핀란드를 학습 결손 국가로까지 부르던 영국 프랑스 스웨덴 미국 같은 나라들이 이제 핀란드의 교육력에 놀라고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교육은 핀란드에 모방과 흉내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이 핀란드 교육을 눈여겨 보는 중이다.
우리나라 교육 관리들도 핀란드의 교육을 유심히 관찰하는 모양이지만, 우리 공교육에 핀란드의 교육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옳지 않다. 우리나라의 인구 밀도나 문화적 감각, 교육에 대한 국민적 기대들이 상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구는 저들보다 10배가량 더 많다. 인구 밀도도 30배가량이나 차이가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핀란드의 교육과 1대1로 비교하는 것은 피차 불편하다. 그렇다고 핀란드에 본받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가 저들의 교육혁신을 위해 한때는 미국 교육을 전거로 삼아 자신의 교육을 탈바꿈시켰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핀란드는 교육을 이해하는 감각이 전반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중등교육을 인체의 허리에 비유하곤 한다. 허리가 튼튼해야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다는 식으로 튼튼한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철학의 전통이 미국 교육문화의 좋은 점이다. 튼튼한 몸과 마음을 위해 성적은 그저 그 옛날 신사처럼 C학점이면 충분하다는 여유 교육 역시 바람직했지만, 옛 소련이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리자 미국은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교육 과정을 바꾸고 교사 교육도 강화했지만, 중등교육이 기대 이상으로 수월성을 회복하지는 않았다. 대학의 경쟁력만큼은 세계 최고인 미국으로서는 세계에서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중등교육과 대학교육 간의 괴리에 견딜 수 없었다. 미국은 중등교육의 혁신을 위해 선택과 경쟁의 기업철학으로 중등교육의 돌파구로 삼았다. 대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선택과 집중으로 중등교육을 혁신하였지만 성과는 요원한 현재일 뿐이다.
핀란드는 미국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미국식 선택과 경쟁이라는 논리 대신 분배와 협력, 자율을 중등교육의 철학으로 삼았다. 미국은 학교혁신을 기업혁신으로 응용했지만, 핀란드는 교육혁신을 국신(國身) 키우기로 비유했다. 핀란드는 교육을 국가의 몸으로 간주했다. 기업은 기업 이윤을 위해 특정 제품이나 업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이윤을 내줄 몇 가지를 선택, 그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해야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난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들어맞으면 이윤의 극대화도 따라 붙지만, 실패하면 해당 기업은 투자 규모에 상관없이 죽는 수 밖에 없다.
핀란드에 교육은 국가라는 몸이었다. 몸에서 심장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심장만을 선택하여 그것을 강력하게 만들거나, 발이 중요하다고 발만을 집중적으로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키우면 그 몸은 끝내 신체장애, 불구가 될 뿐이다. 균형이 깨진 몸으로는 사람 구실도, 나라 구실도 불가능하다. 어느 누구의 몸이든 균형적 발달과 성장이 필요하다. 교육도 몸처럼 균형적으로 성장시켜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핀란드의 교육철학이었다.
선택과 집중은 `돈`이라는 기업 이윤을 염두에 두지만, 분배와 협력,그리고 자율은 돈이라는 글자를 뒤집어 놓은 `굳(GOOD)`이라는 국가이익을 우선한다. 핀란드는 영재라는 소수의 이윤보다는 학생 모두가 인재라는 국가이익을 택했기에 교육강국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