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 지도자, 시진핑의 역사적 사명
5세대 지도자, 시진핑의 역사적 사명
지난 11월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등극하면서 5세대 지도부의 시대가 열렸다. 시진핑의 어깨에는 G2의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국제무대에서의 화합과 중국 내부에 산적한 갈등 해소라는 역서적인 책무가 주어져 있다.
1949년 중국 인민 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지도부는 1세대에서 5세대까지의 변화를 겪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은 무산계급혁명을 기치로 극단적인 사회주의 노선의 길을 걸었다. 1세대 지도부는 숱한 영웅담을 남기며 불가능해 보이던 중국 통일을 이뤄내고 신중국을 건설한 공이 있다. 하지만 사회 안정과 경제발전, 민생확충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마오쩌둥은 1959년 대약진 운동에 실패한 후 잠시 2선으로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가 1966년 문화대혁명을 통해 다시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아픔과 사회모순이 발생했고, 인민들은 갖은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4세대 지도부 거치며 G2로 성장한 중국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덩샤오핑을 필두로 한 2세대 지도부가 등장한다. 덩샤오핑은 중국 공산당의 지향점을 무산계급혁명에서 경제 건설로 전환시키는 역사적인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중국은 경제 건설의 방법으로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한다. 이때부터 중국은 대전환기를 맞는다. 이후 중국은 경제 건설에 매진해 13억 인구를 기아에서 구출하게 된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대한 경험이 전무 했던 만큼 개혁개방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들이 발생했다. 덩샤오핑 생전에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했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 전 총서기가 불명예스럽게 실각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리고 1989년 중국 사회의 비극으로 남게 되는 텐안먼 사태가 발생했다. 텐안먼 사태 이후 개혁개방 노선이 후퇴하는 기미를 보이자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의 불씨를 다시 당기며 중국의 경제개발을 밀어붙였다.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하면서 2세대 지도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고 당시 총서기인 장쩌민을 필두로 한 3세대 지도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3세대 지도부는 상하이 등 경제개발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제 관료들이 중심이 됐다. 철저히 실용적이며 시장과 자본을 손바닥 위에 놓고 주무를 수 있는 풍부한 노하우와 기술을 갖춘 정치인들이 주류를 이뤘다. 이 시기에 중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주룽지 전 총리는 중국의 국유 기업, 국유 은행들에 과감히 개혁의 칼을 들이대며 미래를 준비했고 국내외의 반발을 무릅쓰고 WTO에 가입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장쩌민은 2002년 당 총서기직을 후진타오에게 물려줬다. 이로써 후진타오를 비롯한 4세대 지도부가 탄생했다. 후진타오는 3세대 지도부 시절 경제 건설이 동부 연안에 집중됐고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의 개발이 진행됐다는 인식 하에 자신의 집정 이념인 과학발전관을 제시하며 서부 대 개발, 경제성장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서부의 낙후 지역에0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고, 미래 전략산업에 막대한 국가보조금을 집행했다. 2008년에는 베이징올림픽을 개최했으며 2010년에는 경제 규모 기준으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이제 세계 각국은 중국을 G2라고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굴기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외교력도 급신장했고 중국의 힘은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중동, 라틴아메리카까지 뻗어나가게 됐다.
시진핑, 중화민족 강조하며 변혁 예고
그리고 지난달 시진핑 총서기가 등극하며 5세대 지도부가 탄생했다. 시진핑 시대에는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정치, 사회적 격변으로 지구촌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 짙어질 10년이 펼쳐져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지구촌이 공유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의 경감과 해소는 미국과 함께 G2에 올라선 중국이 역할과 기여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 또한 중국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빈부격차 해소와 연안, 내륙, 도, 농 간 발전 불균형시정, 발전 모델의 전환 등은 시진핑 시대가 무엇보다 시급하게 헤쳐가야 할 과제다. 시진핑은 취임 일성으로 중화민족은 위대하다고 목호리를 높였다. 지난달 15일 총서기로 결정된 직후내외신 기자 상견례에서 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을 수차례 강조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외부적으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쳐 강대국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주어진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며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중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단결, 전진해 나가자는 뜻이 담겨있다. 내친김에 세계 제일로 나가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해석된다. 민생문제 해결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시진핑은 인민이 더 좋은 교육, 더 많은 수입 그리고 더 나은 의료, 주거, 사회보장,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며 이게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말해 민생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관료들을 상대로 한 정풍 운동도 예고했다. 당 간부들의 부패와 독직, 군중과의 괴리, 형식주의, 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질타하며 모든 당원이 경각심을 갖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중국 인민들의 부패청산에 대한 갈망에 맞닿아 있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류즈쥔 전 철도부장 비리사건에서 보듯 부정부패가 여전하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더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과는 G2 국가로서 협력과 경쟁을 펼쳐나갈 전망이다. 중국은 최근 일본과의 야오위 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필리핀, 베트남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데, 분쟁 상대국들은 G2 상대국인 미국의 우방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미국과 국지적인 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은 협격관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 시진핑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협력의 틀 속에서 경쟁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진핑의 5세대 지도부는 중국과 미국이 경쟁 속에서 협력을 모색하면서 국제 사회의 리더로서 역할을 해나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