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980년]윤쾌병 한국야쿠르트유업(주) 사장님은 건강한 아침을 여는 국민건강 지킴이
경영철학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회사와 사원 간의 일체감 중시
·지속적인 서비스 교육 통한 고객만족
유산균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1970년대 우리나라에 최초로 유산균 음료를 도입, 우리 식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한국야쿠르트유업.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효유를 일컫는 요구르트 하면 야쿠르트 아줌마와 ‘야쿠르트’를 떠올린다.
새롭게 발효유 시장을 개척해 국민 건강의 길잡이 역할을 한 한국야쿠르트에는 1969년부터 20년 넘게 기업을 이끌어온 故 윤쾌병 사장의 발자취가 진하게 남아 있다. 그는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사원의 복지 향상, 고객만족’이라는 올곧은 경영철학으로 ‘건강 사회 건설’이라는 창립정신을 지키며, 한국야쿠르트를 급성장시켰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축산을 전공한 윤쾌병 사장은 1950년부터 서울대학교 수의대, 건국대학교 축산대 등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당시는 우유처리장조차 없을 만큼 축산에 대해서 척박했던지라 그는 육가공시설 등 각종 시설을 만들고 학생들을 일본으로 연수를 보내는 등 축산 관련 학문의 폭을 넓혀 나갔다.
현재 건국대학교 축산대학의 기틀은 윤쾌병 사장에 의해 그렇게 세워졌다. “성실하고 근면하며 모든 일에 정열을 다하자”는 좌우명에서 알 수 있듯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씩 성실히 틀을 잡아 나가는 리더의 면모는 이때부터 발휘되고 있었다. 이후 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단을 떠나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유산균 제조업체인 한국야쿠르트와 인연을 맺게 된다.
한국야쿠르트의 사장으로 그가 보여준 경영방식은 혁신적이었다. 1971년 액상 요구르트인 '야쿠르트'를 처음 시장에 내놓은 그는 하루 80만 본을 생산하는 안양공장을 두고 경기도 평택에 하루 150만 본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새롭게 설립하였다. 유산균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시기였기에 윤쾌병 사장은 지속적인 홍보로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에 주력하였다.
특히 유산균 전문업체로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과감히 방문판매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야쿠르트의 상징이기도 한 노란 제복의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여성 판매원의 방문판매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가가호호 방문해서 유제품을 배달하는 모습은 생소하기만 하던 조직적 방문판매 방식을 자연스러운 일상에 들여와 건강한 삶을 여는 아침의 상징으로 정착되어 갔다.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는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등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윤쾌병 사장의 이러한 경영혁신으로 1977년 야쿠르트 하루 판매량이 100만 병을 돌파했으며,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유산균 발효유 공식공급업체라는 영예를 안게 된다.
발효유라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자 후발 경쟁업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83년부터는 라면 및 스낵사업에 진출해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더 좋은 품질의 새로운 상품을 속속 개발해 선발업체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지켜 나갔다.
2004년 기준 한국야쿠르트는 1조 1,000억 원에 달하는 발효유 시장에서 40%라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윤쾌병 사장의 끊임없는 노력과 합리적인 경영으로 한국야쿠르트는 성장과 안정을 통해 신뢰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윤쾌병 사장의 경영철학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사원의 복지 향상, 고객 만족’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업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회와 국가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느냐, 고객들에게 얼마나 서비스할 수 있느냐, 사원들의 복지 향상에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 등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세 가지 경영 방향에 맞춰 경영합리화에 전력을 쏟은 결과, 오늘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회사와 사원 간의 일체감을 중시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사원 개개인의 신상에 대해서도 항상 세심하게 신경을 쓰곤 하였다.
윤쾌병 사장은 유능한 사원보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회사에 쏟아부을 수 있는 성실한 사원을 더 소중히 여겼다. “경영자와 사원을 이어줄 수 있는 끈은 경영자 쪽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믿고 회사가 잘되면 사원도 더불어 잘살 수 있다는 강한 일체감을 심어주는 것에 경영의 초점을 맞춰 나갔다. 이같은 경영이념은 소비자와 직접 부딪치는 1만 2,000여 명의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서비스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회사의 제품을 팔고 있다는 자부심과 성실성을 갖고 있을 때 소비자와의 인간적인 유대관계도 맺을 수 있고, 제품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확신하였다. “흔히들 기업 성장의 비결로 자본, 인재, 상품력 등을 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업을 어떤 자세로, 어떤 방향으로 일정하게 이끌어가는가 하는 경영 방향 내지 윤리의 확립입니다”라고 늘 강조했다.
윤쾌병 사장은 아침 조회시간에 회사 신조를 제창하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첫째, 국민 보건에 기여하는 야쿠르트의 철저한 보급. 둘째, 우리 산업 발전을 도모하여 국가 시책인 낙농발전에 이바지하자. 셋째, 우리는 조직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다. 넷째, 전원이 자기의 능력을 다하자. 다섯째, 판매점이 풍부한 경제력을 갖자”라는 회사 신조는 창립정신이자 그가 추구하는 경영의 목표였던 것이다.
첫째, 국민 보건에 기여하는 야쿠르트를 철저히 보급하자. 둘째, 우리 산업 발전을 도모하여 국가 시책인 낙농발전에 이바지하자. 셋째, 우리는 조직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다. 넷째, 전원이 자기의 능력을 다하자. 다섯째, 판매점이 풍부한 경제력을 갖자 |
이러한 경영방식은 사원들 스스로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자부심을 갖게 하였고, 이것이 한국야쿠르트유업이 성장하는 초석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1975년 ‘사랑의 손길펴기회’를 조직하는 등 불우이웃돕기에 앞장섰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은 기업가들의 당연한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해온 윤쾌병 사장은 불우청소년돕기에 앞장서 그들이 훗날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올곧은 경영철학과 인간존중의 경영을 펼친 그는 1978년 동탑산업훈장 수상을 시작으로 도시새마을운동 대통령표창, 한국경영자대상, 국민훈장 목련장, 고려대 경영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유가공품은 우리 식생활에 단순한 기호품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 지 오래이다. 윤쾌병 사장은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실천 목표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해 우리 식생활 문화의 질을 한층 높였을 뿐만 아니라 2000년 작고할 때까지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경영목표를 올곧게 실천한 경영인으로 꼽히고 있다.
1969년 창립한 한국야쿠르트는 ‘건강 사회 건설’이라는 창업정신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제품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기업이다. 액상 요구르트에서 다양한 기능성 드링크 발효유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발효유업계의 선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란색 제복의 상냥한 야쿠르트 아줌마는 고객을 찾아가는 기업인 한국야쿠르트의 얼굴이기도 하다. 1971년에 야쿠르트 아줌마를 채용하면서 여성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던 시대에 국내 처음으로 방문판매를 시작하였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한국야쿠르트의 비약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유휴노동력을 삶의 현장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회, 경제적 선진화에도 기여하였다. 한국야구르트는 1983년에 시작한 라면, 스낵사업으로 제품 영역을 다양화하였고, 차음료는 물론 조미식품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야쿠르트의 2002년 매출액은 8,400억 원이며 16개 지점, 81개 영업소, 485개 영업장을 두고 있다. 2002년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에 선정된 데 이어 2003년 10월 NCSI(국가고객만족도) 6년 연속 정상을 차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