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의 부활, 샤프의 몰락
히타치의 부활, 샤프의 몰락
일본은 회계연도가 4월부터 시작하는 지라 요즘 기업마다 2014회계연도 실적 발표가 한창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사상 최고 실적을 내놓고 있는 곳이 상당수인데 이 가운데 전자 기업들의 부활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부활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일본 전자 업계에서는 극단적으로 운명이 엇갈린 두 기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활의 상징은 히타치 제작소, 몰락의 상징는 샤프다. 샤프는 경영 전략과 구조조정에 관한 철학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실행력의 차이가 기업과 직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히타치제작소는 글로벌 금용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8년 무려 7873억 엔의 최종 적자를 기록했다. 히타치가 당시 기록했던 적자는 일본 제조업 사상 최대 적자다. 그랬던 히타치가 지난해 5800억 엔의 사상 최고 영업 이익을 낼 전망이다. 아베 노믹스 엔저 정책이 히타치의 부활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엔저로 설명하기엔 히타치의 변신은 불가사의할 정도다.
히타치, 파격적 구조조정으로 화려한 부활
히타치의 화려한 부활은 일본 기업으로는 드물게 파격적이고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덕분이다. 히타치는 TV나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지금도 일본 내에서는 히타치 전자제품들이 꽤나 인기가 있다. 그런데 히타치는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을 필두로 한 후발주자들이 무섭게 따라오자 업종 자체를 바꿔 버리는 파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TV, 디스플레이와 같은 돈 안 되는 사업은 폐쇄하거나 줄여버리고 대신 철도, 에너지, 승강기와 같은 임프라스트럭처 관련 사업으로 사업을 180도 전환했다.
사업을 전환하는 과정은 일본 기업답지 않게 공격적이고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인수합병에 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일본 재계 문화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였다.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 철도 회사를 무려 2조 원이 돈을 투입해 인수하기로 했다. 히타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도 서슴없이 결정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와무라 다카시 전 회장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히타치가 망하기 직전 구원투수로 투입된 아와무라 전 회장은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부활을 이끌었다.
히타치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는 잘나가는 사업도 회사 전략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구조조정 대항에 올렸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들이 사업부가 완전히 망하기 전에는 웬만해선 손을 떼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리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히타치는 전자회사에서 인프라스트럭처 회사로 사업을 전환하기로 한 후 하드디스크 관련 자회사를 해외에 매각했다. 하드디스크 사업은 히타치의 사업 중 상당히 수익성이 높은 기업이었는데도 과감하게 매각을 결정했음 결과적으로 보면 매각 대금을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을 위한 인수합병에 투입해 더 높은 수익을 내고 있으니 최선의 선택을 했다. 또한 발전 사업을 떼 내 미쓰비시중공업과 합작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잘나가는 사업을 회사 전략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에 올려놓은 것은 기존 일본 기업과는 상당히 다른 전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간은 전략이 히타치를 짧은 기간에 최고의 회사로 부활시킨 비결이다. 물론 인프라스트럭처라는 사업 방향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잘 맞아떨어졌다. 아시아 등 신흥국에서 인프라 투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데다 신흥국에서 인프라 투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데다 신흥국, 선진국 할 것 없이 히타치의 주력 사업인 철도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사업 기회는 더욱 늘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바주나수를 개척하려는 히타치의 전략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히타치는 내년부터 연구개발비를 올해보다 무려 30% 늘린 연 5000억 엔을 쏟아 부을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4~5%에 달하는 것으로 미국 GE나 독일 지멘스와 맞먹는 규모다. 연구개발 인력도 지금보다 15% 늘어난 3000명 정도로 키울 예정이다. 불과 8년 만에 극적인 반전을 일으킨 히타치의 혁신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소기업으로 전략하게 된 샤프
한때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했던 샤프는 여전히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샤프는 삼성전자에 반도체 기술을 전수해 준 기업이다. 몇 년 전 삼성전자가 어려움에 빠진 샤프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것도 과거 인연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샤프는 LCD 디스플레이에 관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해 왔다. 한구 기업의 추격에다 값싼 원가로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기업들의 도전에도 샤프는 기술 완벽주의를 고집하며 버텨 왔다. 하지만 그 탓에 구조조절이나 사업 다각화가 늦어지면서 위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LCD TV를 비롯한 주요 사업부에서 대규모 적자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샤프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히타치와는 달리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재빠르게 진행하지 못한 사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부실이 덮친 것이다.
지난해에도 순손실이 2000억 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에는 300억 엔 정도로 예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상당수 일본 전자업체들이 엔저 덕분에 수익이 개선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샤프의 부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샤프는 주거래 은행인 미즈호 은행, 미쓰비시도쿄 UFJ 은행과 출자전환을 통해 재생을 모색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고 있다. 오사카 본사를 매각하는가 하면 40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외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샤프가 일본 내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샤프는 또 그나마 돈이 안 되는 사업이 아닌 돈 되는 사업을 분사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워낙 돈 되는 곳이 없다 보니 이 사업이라도 분사해서 자본 제휴 등을 보다 원활하게 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샤프는 1200억 엔 수준인 자본금을 99% 이상 감자해 1억 엔 이하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경우 중소기업으로 인정받아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이 있는 것을 노린 것이다. 한 때 세계 전자 시장을 호령했던 대기업이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같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샤프는 결국 해체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여전히 높다. 샤프주식은 투자자들에게 투매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