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스크랩] 경제수장 해밀턴

루지에나 2010. 8. 24. 05:42

 

미국 첫 공황을 극복한 해밀턴

 



- 정부의 재정은 파탄이 났고 수입원은 전무했다.
- 정부는 전쟁중에 발생한 막대한 부채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국가신용도는 추락하고 말았다.
- 이렇다 할 돈조차 없었다. 대륙회의에서 발행한 2억 달러의 지폐는 화폐가치를 거의 상실했다.

  당시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해 “대륙회의 지폐만큼이나 가치가 없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돈을 모자나 개에게 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쩐지 전혀 다른 세상의 일 같지 않죠?
1789년 알렉산더 해밀턴이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맡을 때의 경제 상황이었습니다. 해밀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선봉장에 섰고, 독립 후에는 13개 주가 강력한 연방으로 합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었지만 정작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는 이런 난관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해밀턴은 연방정부가 국내외의 모든 채권을 떠안아 대형국채로 통합하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빚을 떠안는다는 것은 연방 차원에서 과세를 한다는 뜻이고 이는 수익이 보장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외국 부채는 재조정해 월 단위로 조금씩 갚아나갔습니다.

해밀턴은 또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은행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은행주(銀行株)들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했습니다. 거품은 빠지기 마련이었고 1792년 마침내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경제공황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해밀턴은 은행주를 적극 매입함으로써 시장을 안정시켰습니다.

해밀턴은 또 제조업을 육성시키는 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급성장시켰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미국인은 해밀턴을 미국 독립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여깁니다. 10달러 화폐에 해밀턴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밀턴은 사생아였습니다. 바람둥이 어머니는 불륜으로 해밀턴을 낳았습니다.

아홉 살 때 아버지는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났고, 13세 때에는 어머니마저 병으로 떠났습니다.

이종사촌이 후견인이 됐지만 1년 만에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해밀턴이 재무장관을 맡았던 때의 미국 경제는 아마 지금의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국가 존립이 위태로웠을 겁니다. 이때 해밀턴이 내놓은 경제정책은 그가 독립전쟁 때 경제에 대한

무지를 자각하고 포화 속에서 밤새워 이 분야 지식을 쌓고 고민 끝에 만든 방안이었습니다.

경제위기에서 수장(首將)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해밀턴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약간의 천재성에 대해 칭찬한다. 내 모든 천재성은 이렇게 이뤄졌다.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깊이 공부한다. 낮밤 가릴 것 없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마침내 통달한다.

내가 그렇게 이룬 성과에 대해 사람들은 천재성의 과실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노력과 통찰의

결실일 뿐이다.”  촐처 : Kormedi

 

 

 

 

10달러 지폐의 주인공

퀴즈 하나.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새겨져 있고 5달러엔 에이브러햄 링컨 16대

대통령,20달러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이 모델이다. 50달러 율리시스 그랜트 18대 대통령,100달러가 정치가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인데,그러면 우리의 1만원처럼 널리 유통되는 10달러짜리 지폐에 새겨진 인물은?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초대 재무부 장관(1789∼1795년)이 정답이다. 해밀턴은 혜안을 발휘해 주(州)마다 달라

난마와 같던 미국 내 화폐단위를 과감하게 통합하고,지금의 연방은행 체계를 세운 인물이다.

한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초상으로 대체될 뻔했으나 해밀턴이 10달러 지폐인물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점을 보면 미국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각별한 존경심의 무게와 깊이가 느껴진다.

미 대선일인 4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중 누가 44대 대통령에 당선돼

백악관의 주인이 될지 관심인 가운데 어느 인물이 차기 정부의 첫 재무장관직에 앉을지도 자못 궁금하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최일선에서 뒤치다꺼리해 경제를 보기 좋게 회복시켜야 하는

주인공이 바로 새 재무장관이다. 탁월한 재무장관이어야 미국이 살아나고 글로벌 경제가 살아난다.

조급하기는 워싱턴 정가나 금융시장도 매한가지다. 오바마 진영에서는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티모시 가이스너 뉴욕 FRB 총재,워런 버핏 벅셔 해서웨이 회장이,

매케인 진영에서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메그 휘트먼 전 이베이 CEO,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발행인인

스티브 포브스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재무장관감 감별작업의 기본은 단연 후보들의 성향부터 따지는 일이다. 서머스는 재무장관 시절 이번 금융

위기의 뇌관인 파생금융상품의 확산을 규제하지 말자고 반대했던 인물이다. 81세인 볼커는 FRB 의장 때

고금리 정책으로 물가를 잘 관리한 반면 경기 침체를 초래했다는 양면 평가를 받고 있다.

가이스너와 졸릭은 뚜렷한 색깔이 없다.

버핏 발머 포브스 체임버스 휘트먼으로 말하자면 '시장(市場) 사람들'이다. 버핏은 월가 투자가로 미국 2위의

거부이고,발머는 독점 시비로 미 정부와 소송까지 벌인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다. 블룸버그는 선출직 시장

(市長)이지만 블룸버그통신 창업자다. 금융위기 원인이 무분별한 시장의 탐욕,이런 시장을 방임한 정부

탓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터에 장터 출신들이 후보군에 오른 것 자체가 흥미롭다. 시장(골드만삭스)

에서 발탁된 헨리 폴슨 현 재무장관은 금융위기 대응에 실기했다고 도마에 올랐다.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면서

 정공법인 은행권 부분국유화를 미적거리는 바람에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시장과 정부의 실패를 빌미 삼아 강력한 월가 규제와 감독을 앞다퉈 선언해 놓았다.

차기 대통령이 흘러간 인물을 고를지,아니면 시장 출신으로 시장을 다스릴지,또는 전혀 의외의 인물을

내세울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해밀턴처럼 능력 있는 인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출처 : 경제수장 해밀턴
글쓴이 : 캄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