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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오늘(1월 8일) 왕(King)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왕’으로 번역되지요?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미국 미시시피 주 투펠로의 방 두 칸 자리 집에서 첫 울음을 울었습니다. 엘비스는 딸 리자 마리 프레슬리가 ‘팝의 황제(King of Pop)’ 마이클 잭슨과 결혼했으니, 제왕이면서 황제의 장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엘비스는 흑인음악을 백인의 영역에 끌어들인 혁명적 가수였습니다. 그는 로큰롤, 로커빌리(록과 컨트리가 섞인 음악), 컨트리, 가스펠 네 분야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일무이한 가수이기도 합니다.
부모는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8달러 어음을 위조한 죄로 교도소생활을 했고 어머니는 재봉틀 일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동네는 백인과 흑인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곳이었습니다. 엘비스는 초등학교에서 조용하고 말을 더듬는데다 ‘마마보이’라는 이유로 또래로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둠 속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엘비스는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키웠습니다. 10세 때 동네의 노래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엘비스는 11세 생일 때 당시 또래 대부분의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권총을 선물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가 ‘어둠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권총 대신 기타를 선물했고 이것은 아들이 ‘왕’이 되는 실마리가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엘비스는 고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트럭을 몰다가 어머니의 생일 기념으로 자신의 음악을 녹음해 선물하면서 ‘음반업계’에 들어섭니다.
그는 새 영역을 개척했고 이 과정에서 온갖 비난을 받았습니다. 엘비스는 흑인의 음악을 백인 음악에 편입시킨 공로자 중 한 명인데 백인들로부터 “부끄러운 줄 모르고 깜둥이 노래를 부른다”고, 흑인들로부터는 자신들의 음악을 훔쳐갔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엘비스는 남성의 골반을 해방시킨 주인공으로도 불립니다. 남성은 엉덩이춤을 추는 것이 금기로 여겨지던 때 격렬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엉덩이춤’을 선보였습니다. 이 춤은 엘비스에게 ‘골반’(Pelvis)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는데 점잖은 이들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1956년 플로리다 법원은 엘비스는 야만인이며 공연 중 엉덩이춤을 추면 즉시 체포하겠다고 판결했고 이 때문에 엘비스는 공연 중 몸은 꼼짝하지 않고 ‘손가락 춤’만 춰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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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는 1957년 징집영장이 나오자 흔쾌히 입대합니다. 연예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특별부대에 배속하겠다는 제안도 물리치고 서독에서 보병으로 근무합니다. 엘비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어머니는 아들의 군 복무 중 간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엘비스는 군 복무지에서 상관의 미성년자 딸인 프리실라와 사랑을 약속하고 미국으로 데리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