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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대 전 CEO 정주영회장의 리더십

루지에나 2015. 12. 18. 09:42

 

현대 전 CEO 정주영회장의 리더십
정주영 회장의 삶의 철학과 이념
- 삶의 철학
(1) 성실성
강원도 아산에서 출생한 정주영은 그의 삶의 전반적인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재산은 부지런함과 근검 절약이었다. 정주영 스스로 평생의 자본이라고 말하던 것이 부지런함이었다. 매일이 새로워야 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루마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부지런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실함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경력이나 학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일을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극복하지 못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이유 같은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도 차근차근 풀어나 갈 수 있는 해결책이 보이게 된다.
작은 일에 성실한 이를 보고 우리는 큰 일에도 성실하리라 믿는다. 작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는 사람은 큰 약속도 틀림없이 지키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실한 모습은 신용을 얻는 최고의 방법이 된다.
(2) 결단력
매사에 빠른 결단력과 속전속결의 모습을 보여온 그는 늘 어떤 일이던지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현대가 주력해왔던 건설업은 즉각적인 결정이 중요한 산업이다.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무리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결정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주영 회장의 모습은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일화로 방송국에 2억이라는 기부를 5분도 안 되어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직접적으로 기업경영과 큰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어떤 사안을 두고 빠른 결정을 내는 속전속결 방식 속에 그의 경영 철학이 숨어있는 것이다. 빠른 행동력으로 공사기간을 앞당겨 인력비와 투자비를 줄여야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돈과 시간에 쫓기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인은 그때그때 적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적인 민첩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설마?\'하고 웃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현대그룹의 정주영 왕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1972년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을 빌리기 위해 소나무와 초가가 보이는 울산조선소 부지 사진 한장만 들고 영국 버클레이 은행을 방문했다.
"돈을 빌려주면 여기다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팔아서 갚을테니 돈을 빌려 주시오".
그러자 은행장이 미심쩍은 듯 "도대체 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하고물어보았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 그림이 그려있는 우리나라 지폐를 한 장 꺼내 보였다. 그리곤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1500년대에 이미 거북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기가 질린 은행장은 까다로운 조건을 하나 걸었다. "앞으로 당신이 만든 선박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차관을 주겠습니다" 아직 조선소도 없는 정주영 회장으로서는 \'엄동설한에 딸기를 따오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였지만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은 여기서 위력을 발휘했다.
정회장은 스코트 리스고 조선소에서 26만톤짜리 선박 설계도면을 한 장 빌려서 마침 파리에서 휴가중인 세계적인 선박왕 리바노스를 찾아갔다.
"당신이 배를 사겠다고 계약 해 주면 이 계약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맨주먹 마케팅을 전개했다.
"현대가 만드는 첫배를 당신한테 바치는 영광을 달라"는 정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에 감탄한 그리스 3대 선주의 한사람인 리바노스는 선박건조 경험은커녕 조선소조차 없는 현대에 26만톤급 유조선 두 척을 주문했다.
이 계약 덕분에 정주영 회장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울산의 한쪽에는 조선소를 짓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조선을 건조해 2년 3개월만에 완공했다.
무엇이 정주영 회장을 부자로 만들었는가? 그것은 열정과 끈기의 맨주먹 마케팅이 성공비결이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영업활동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을 한번 머리에 떠올려보자.
용기가 날 것이다. 그런 용기로 다시 한번 시작할 때다.
[정주영의 경영철학]
-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지, 필사적인 노력으로 찾아나서면 다 해결 방법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정주영식 손자병법]
- 병사들은 극한 상황에 빠지면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단결력이 굳어지며, 깊이 들어가면 투지가 생겨나고, 부득이하면 싸움에 임하게 된다.
[정주영 뛰어넘기 성공전략 포인트]
집념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늘도 감동한다!
(1)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면 집념은 저절로 생긴다.
(2) 매일 아침마다 소리 내어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다짐하라.
(3)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다른 사람을 감동 시켜라.
정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MBC)
성공 비결 1 - 내 몸이 담보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16세에 가출, 막노동판을 전전 하다가 서울의 쌀가게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신용밖에 없다고 생각한 정주영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그 결과 쌀가게 주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스물 일곱 되던 해,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리게 되는데.
자동차 정비공장 문을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화재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빚을 얻어 시작한 정비공장이 전소되자, 정주영은 빚위에 또다시 빚을 지게 되고.
다시 일어서야 할 그때, 정주영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은 쌀가게 시절 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이 다시 일어나 오늘 현대그룹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신용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성공 비결 2 - 구두쇠.
30여년 전에 지은 그의 집엔 20여년이 넘은 소파와 10년이 다 된 17인치 TV가 전부였습니다.
17년전 작업복을 죽기전까지 입고다?을 정도.
정주영은 젊은 시절부터 아끼는데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 제일의 부자 정주영은 구두쇠엿던것이지요.
성공 비결 3 - 아침형 인간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 또 하나.
그 누구보다 부지런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쌀가게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던 정주영은 자신이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는데.
현대회장으로 있을당시에도 새벽 6시 기상, 7시면 회사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성공 비결 4 - 빈대만도 못한놈
정회장이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 늘 하는 말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햇답니다.
그것은 부두 노동자 시절 몸으로 익힌 정회장의 철학이 담긴 욕설이라고 합니다.
부두 노동자 시절, 몸에 기어 오르는 빈대를 피하기 위해 네 개의 물그릇에 상다리를 담궈 놓고 상위에서 잠을 자던
정회장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빈대에게 시달리게 된다.
살펴 본즉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정 위에서 몸으로 뛰어 내린 것인데.
빈대도 머리를 쓰면 되는데,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햇습니다.
정주영은 사업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멋지게 성공을 하곤 했지요.
한겨울 보리를 심어 잔디를 대신 했던 부산 UN묘지 공사며,
폐 유조선으로 단번에 물길을 막았던 서산 간척지 공사.
그의 성공은 상식에 매달리지 않는 신선한 발상의 성공이었습니다.
성공 비결 5 - 불도저
정주영 회장의 별명은 불도저.
그것은 한 번 마음먹은 사업을 무섭게 밀어 붙이는 추진력 때문인데.
1970년, 울산 모래 벌판에 세워진 조선소는 모두가 불가능 했다고 말한 사업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그곳에 조선소가 세워지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오직 정주영 뿐이었습니다.
울산 모래 벌판의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반에 해당하던 4500만불의 차관을 얻어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만들었던 정주영.
그는 조선소 도크 건설과 동시에 26만톤 짜리 두척의 배를 만드는 세기적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30개월 후, 대한민국 최초로 만든 거대한 유조선은 한국을 세계 제 1위의 조선국으로 도약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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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리더십
동아시아 바다를 완전히 장악한 장보고는 분명한 역사적 인물로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재해석하고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글로벌 마인드와 네트워크 활용능력은 현대의 경영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국제무대에서 맘껏 펼치게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장보고라는 인물은 확실히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은 통찰력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그가 천민출신으로 세계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청해진이라는 해상왕국을 건설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무술 실력보다는 타고난 지도력과 추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오늘날 많은 경영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해상왕 장보고의 리더십을 몇 가지 꼬집어보자.
1. 장보고는 시대를 읽는 남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 장보고는 조공무역이 쇠퇴하고 민간무역이 도래할 것을 미리 예측했다. 그리하여 동북아를 각각의 나라로 따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권역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장보고는 국제적 감각의 리더쉽을 소유하고 있었다. : 청해진은 1만명의 민군(民軍)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구성원들은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장보고는 국가별 문화적 차이를 인정했으며, 청해진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해외에서 아웃소싱하는 등 국제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3. 장보고는 완벽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 군사력, 조선술, 항해술에서 장보고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영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잘 정비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해상의 무역을 리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4. 장보고는 네트워크 활용능력이 뛰어났다. :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그만큼의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은 신라, 당,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신라인들을 결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는데, 이 네트워크가 바로 장보고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5. 장보고는 글로벌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 : 그는 청해진 중심의 해상체제에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청해진의 활동에 당과 일본을 참여시키기 위해 당시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도입한다. 당나라의 직제를 그대로 차용하고 동아시아 3국의 공통 코드로 불교를 받아들여 국경을 초월하는 등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참고자료: 삼성경제연구소, 천년 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출처 : 추억의 추풍령
글쓴이 : 오뚜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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