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컨설팅

[스크랩] 조지프 스티글리츠(Stiglitz·66) 컬럼비아대 교수

루지에나 2010. 10. 6. 15:01

김인준 교수… "신흥시장국들이 글로벌 경제회복 이끌까요?"

스티글리츠 교수…

 "풀린 달러가 아시아로… 제2 버블 이끌겠죠"

주류 경제학에 화살 날리는… 스타 '反骨학자' 스티글리츠…

 "세계경제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정상적이진 않아…

또 한번의 자산버블 우려"…

"정부 규제로 생기는 비용보다…

 필요한 규제를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비용이 더 커"


"한국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거시경제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금융시장 안정 위해 자본통제 필요"

"출구 전략, 함께 논의 가능하나… 각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속도ㆍ시기는 각각 결정해야 "

강연이 끝나자마자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트레이드마크인 이 '수퍼스타 교수'에게 사인을 받겠다고 학생들이 줄을 섰다.

조지프 스티글리츠(Stiglitz·66) 컬럼비아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2시간여에 걸친 강의를 끝낸 참이었다. 그 바람에 그와 김인준 한국경제학회 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대담은 예정보다 10분 늦게 시작됐다.

그의 글과 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 각국에서 서로 모셔가려는 '스타 경제학자'다. 이번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수년 전부터 경고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에서 가장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뉴스위크)로 불리기도 한다. '자유 시장' '자유 기업' '자유 무역'을 종교처럼 떠받들어온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과 경제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쉴 새 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세계화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된다"며 경제적 약자들을 두둔해온 '반골(反骨)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에겐 '부시와 그린스펀의 저격수'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운전 중 졸았을 뿐 아니라, 주택 가격 상승을 맥주 거품 정도로 무시했다"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두 사람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탓이다.

그는 자신이 지지했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미 정부를 향해 변함없는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은행 부실자산 처리 방안에 대해 '대마불사(Too big to fail)'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부도덕한 은행을 감싸 안는 "대(對) 국민 강도짓"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이익은 일부 개인이 차지하고, 손해는 온 국민에게 떠안기는 '짝퉁 자본주의(ersatz capitalism)"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향해서는 일갈을 가하는 반면,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입장을 옹호해 '개발도상국의 대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그가 늦가을 한국을 다시 찾았다.

서울대 강연을 마치고 OECD 세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나기 직전, 김인준 교수가 Weekly BIZ를 위해 그와 1시간의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전망으로 시작됐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까지도 더블딥(double dip·이중침체) 우려를 제기하는 등 비관론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이다.

부산에서 열린 OECD 세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오른쪽)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고, 김인준 한국경제학회 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ㆍ왼쪽)과 1시간 동안 대담하는 시간도 가졌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인준 교수) 올 들어 글로벌 경제가 회복의 신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경제가 회복되는 패턴에 대해서도 V자형, U자형, W자형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 "1년 전과 비교하면 글로벌 경제 상황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 상당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국가들이 선진국 경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흥시장국이 글로벌 경제 회복을 이끌 것으로 보는가?

"개발도상국들이 수출을 늘리면서 빠른 속도로 회복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세계 경제를 견인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글로벌 저금리로 달러가 많이 풀린 상태에서, 돈이 갈 데가 아시아밖에 없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저금리의 달러 자금을 빌려 해외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것)로 아시아에 자금이 계속 유입될 경우, 아시아에 또 한 번의 자산 버블이 닥칠 수 있다."

그는 대담 내내 중국인 제자가 갖다준 뜨거운 인삼차로 목을 적시면서 우렁차고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두 석학의 화제는 '스티글리츠 위원회'로 넘어갔다. 스티글리츠가 이끄는 이 위원회는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지난해 구성돼 GDP(국내총생산)를 대신하는 새로운 경제지표를 개발 중이다. '아웃라이어(국외자)' 스티글리츠 교수의 '안티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다, 이제는 기존 경제학이 근간으로 삼는 통계지표에까지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이 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첫 보고서는 삶의 질(質)과 지속 가능성, 환경을 반영한 새 통계지표의 밑그림을 그렸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세계경제학계 비주류진영 대표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과 주류 경제학을 향해 쉴 새 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려오는 바람에‘미국에서 가장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뉴스위크)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는‘수퍼스타 경제학자’로 대접받는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세계 경제학계에서 비(非)주류 진영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 경제 자문역과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내는 등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지만,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美) 재무부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 권력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대해 늘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현직 세계은행 부총재이면서도, IMF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IMF가 한국에 대해 긴축 재정과 고금리 처방을 강요하자 "한국의 위기는 중남미와 달리 재정 적자가 원인이 아닌데도 같은 처방을 내리면 경기 위축만 부른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결국 당시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와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장관과의 불화로, 2000년 세계은행을 떠난다.

1943년 미국 인디애나주 태생. MIT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 교수의 지도로 24세 때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강단에 섰다. 27세 때 예일대 정교수가 됐다. MIT 시절, 교수들이 회의를 열어 "스티글리츠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36세 때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은 소장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상을 받았다. '정보의 비대칭성(정보 격차로 인한 비효율과 부조리)'을 연구하는 '정보 경제학(economics of information)'이라는 분야를 개척, 200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세계화를 강도 높게 비판한 대표적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은 전 세계에 35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100만부 이상 팔렸다. 이 밖에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Fair Trade for All)〉, 〈세계화 제대로 하기(Making Globalization Work)〉, 〈3조 달러 전쟁:이라크 분쟁의 진짜 비용(The Three Trillion Dollar War:The True Cost of the Iraq Conflict)〉 등 수십권의 책을 썼다.

지난해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종전의 GDP(국내총생산)를 대신하는 '삶의 질' 지표 개발을 맡고 있다.

■'버블 가격'에 기초한 GDP의 한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 부 교수 / 채승우 기자
―'스티글리츠 위원회' 보고서의 주된 메시지는 무엇인가?

"현재의 경제 측정 방법은 건강이나 복지 같은 우리 사회의 많은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은 개선됐지만, 또 다른 부분은 훨씬 나빠졌다. 하지만 GDP 수치는 그런 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하이라이트다. 사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미국의 GDP 수치는 썩 좋았다. 하지만 명백히 이는 '버블 가격', '버블 이익'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동산도 버블 가격으로 왜곡됐고, 미국 기업 이익의 40% 이상이 금융 쪽에서 나왔는데, 숫자에 불과했지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런 성장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게 글로벌 위기로 드러난 것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더 나은 측정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일찍부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미국 전역이 집값 급등의 달콤한 거품에 취해 있을 때도 "(도박판의) 카드로 만든 집(the houses of cards)"이라고 일갈했다.

―이번 위기를 유동성 위기, 거시경제의 위기, 그리고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기 중에서 어떤 것으로 정의하는가?

"명백히 세 가지 위기가 혼재된 것이다. 거시경제적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이는 금융 시스템의 위기에서 초래됐다. 이는 또한 은행들이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유동성 위기에서 촉발됐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낳은 위기

―이번 위기를 초래한 금융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999년 글래스-스티걸법(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겸업을 금지하는 법)을 폐지하고, 부시 행정부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까지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라는, 경제학적으로 의미 없는 개념을 용인한 미국 정부의 정책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금융기관이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도 그 책임을 주주와 채권자,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여기에 메스를 대기는커녕,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 구제 정책은 은행뿐 아니라 주주와 채권자들까지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투자 주체로 하여금 위험을 지지 않게 했다. '리스크 없이 대가도 없다'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면 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투자가 반복돼 새로운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금융기관 내부의 위기 관리 문제점도 심각하게 드러났다. 미국 금융회사의 자율 규제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그리고 CEO에 대한 보상 문제 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금융기관의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로 인해, 투자은행의 고위 임원들이 과도한 고위험 투자를 감행했고, 이런 도덕적 해이가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위기 이후 1년을 되돌아보면 모든 사람들이 패자(敗者)로 전락한 사이, 은행가들만 승자(勝者)로 살아남았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은행가들에 대한 잘못된 보상 체계가 오히려 강화됐다. 월가 사람들은 버블이 생길 때는 펀더멘탈(경제기초) 때문에 좋다고 하고, 버블이 꺼질 때는 정부에서 개입해달라고 하는 비대칭성을 보인다."

■시장과 규제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

지난 수십년간 미국, 그리고 세계를 지배한 신(新)자유주의 사고는 시장에 자기 조절 기능이 있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공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번 금융위기로 그런 믿음에 치명적 균열이 생기기 전부터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를 '시장 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라고 비판해왔다. 그는 "간섭받지 않는 시장은 재앙"이라며 적절한 정부 규제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시장에 맡겨두는 대신, 정부의 규제를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정부가 금융회사의 규모를 제한하고, 은행 내부의 위험 관리 등에도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규제를 하지 않고 시장에만 맡겼을 경우 해당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반에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이번 위기에서도 드러났다. 다극적(multipolar)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대형 금융기관이 무너진 다른 금융회사를 흡수해 덩치를 더 키운 경우가 많다. 대형 금융기관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 쪼개서 작게 만들어야 하고, 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쟁을 촉진하는 법이 필요하다. 더불어 은행의 자본금 기준을 높이는 등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규제가 비효율을 낳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정부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나?

"정부 규제로 생기는 비용보다는, 정부 규제가 필요한데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비용이 더 크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 정부가 좋은 규제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글로벌 불균형 핑계대지 말라

스티글리츠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위기 수습 방안을 줄곧 비판해왔다. 심지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재무부와 IMF(국제통화기금)는 금융위기를 맞은 한국 등에 무척 엄격한 긴축 정책을 요구해놓고, 이제 와서 똑같은 사람들이 미국발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당시 자신들의 조언과 정확히 반대로 행동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5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도,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외부 요인에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small open economy)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단순히 '물가 안정 목표제'에 집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을 따지지도 않고, 물가가 상승하면 무조건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도 사실 없다. 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은 '수입'된 것이기 때문에,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다 잡을 수도 없다."

그는 월가가 주장해온 자본시장 자유화에도 줄곧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슬란드를 사례로 들면서, 소규모 개방 경제에서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특히 '자본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 강의에서 '토빈세(Tobin's tax·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보수당 후보까지 포함해 많은 후보들이 토빈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브라질이 최근 실제로 도입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혹자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이유로, 글로벌 불균형을 꼽고 있다. 이에 대해 견해를 듣고 싶다.

"미국이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위안화를 절상하라고 하는데, 설사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상한다고 해도 미국은 절대 흑자국이 못될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처럼 값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나? 다른 나라를 비난할 게 아니다.

미국 밖,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저축률이 높은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아시아 저축의 많은 부분이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빈곤국보다, 미국 등 서방 세계로 유입돼 잘못 '재활용'된 것이 문제다. 미국 은행들이 이 자본을 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경제학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글로벌 불균형'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글로벌 불균형', 더 정확히 말해 '글로벌 불평등'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다.

■미국의 출구 전략은 시기상조

―달러 약세가 예상된다. 달러로 많은 외환보유액을 쌓은 나라들로서는 특히 관심 쏟는 이슈다. 달러가 계속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가?

"미국이 당분간은 세계 1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다. 그에 따라 달러도 기축 통화의 지위를 이어가긴 하겠지만, 미국의 재정적자 및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해 달러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국제 공조의 논의장으로 G20이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 G20이 새로운 다극적 경제 질서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가?

"중국과 인도를 포함시키지 않고 과연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것이 정통성과 대표성이 있겠는가. 글로벌 경제·환경 이슈는 더 이상 G8(선진 8개국)만의 논의로는 부족하다."

―다시 현재의 경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니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달러가 엔화와 유로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미 국채(10년물) 수익률이 상승하고 있다. 이것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인가, 따라서 출구 전략을 검토해야 할 때인가?

"지금 여러 국가의 회복 속도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 미국과 유럽은 출구전략을 단행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본다. 집값, 실업률, 신용 문제 등 경제 회복의 장애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출구 전략의 속도와 시기는 나라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 조정자 역할을 해서 출구 전략의 국제 공조가 논의될 수 있을까?

"각국이 출구 전략에 대해 함께 논의해볼 수는 있겠지만, 실제 행동은 각국이 처한 경제 상황과 위험 정도에 따라 각각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 출구 전략을 감행하는 데 신중한 입장이다.

"경제가 충분히 회복됐다면 당연히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겠지만, 잠재적 위험이 남아있다면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에, 아직 폭탄이 많이 남아있다.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따뜻한 경제학자

―이번 위기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너무 좁은 시각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른 사회과학 분야, 역사 등으로 시선을 넓히라고 말하고 싶다."

대담이 끝날 무렵, 김 교수는 스티글리츠 교수에게 "흔히 경제학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차가운 이미지와 달리, 귀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경제학자로 한국에서 명성이 높다"고 덕담을 건넸다. 시종 진중하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바뀌었다.

그가 '약자(弱者)의 경제학'에 천착하게 된 배경은, 어린 시절 보고 느낀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가 태어난 미국 인디애나주의 게리(Gary)는 대표적인 공업 도시였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사회적 불평등을 목격했다.

어린 시절 그의 집에는 다른 미국의 중산층 가정들처럼 아프리카계 가정부가 있었다. 스티글리츠는 "그녀를 보면서, 왜 미국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을 들으며 경제학 이론과 현실과의 간극에 더욱 고민하게 됐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완전한 시장에서는 실업도, 빈곤도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 세계는 이 같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에 줄곧 천착해왔다. 그는 2001년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은 없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시장 주도적 경제와 정부의 통찰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7월 미국 뉴스위크지는 스티글리츠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모아 '미국에서 가장 진가(眞價)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대담이 끝날 무렵, 그 뉴스위크 기사의 복사본을 보여주면서 "이 기사 보셨냐, 공감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아, 그거?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씩 웃었다.
출처 : 조지프 스티글리츠(Stiglitz·66) 컬럼비아대 교수
글쓴이 : 작은도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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