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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 시진핑 –유비 리더십 가졌다.

루지에나 2012. 11. 15. 19:10

 

인물

외유내강 시진핑 유비 리더십 가졌다.

 

출생: 195361일 베이징 출생

        (베이징의 예 이름인 베이핑에서 태어났다고 시진핑이라고 부름)

인종: 한족(아버지 시중쉰, 어머니 차신, 22녀 중 셋째)

학력: 칭화 대학교 공정화학과 법학박사

경력: 푸젠성 당서기, 상하이 당 위원회 서기,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가 부주석, 국가 주석

부인: 초혼: 커화 전 주영국대사의 막내딸 커링링과 결혼했다가 이혼

       재혼: 평리위안 (중국의 국민가수이자 군인)

자녀: 외동딸 (시밍저, 하버드대)

/몸무게:180/ 100Kg

좋아하는 말: 주역의 문구인 후덕재물-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포용한다.

취미: 바둑, 할리우드 영화 보기

좋아하는 스포츠: 축구(중국 월드컵 본선 진출, 개최 우승이 소망)

 

 

무능해 보이는 유방과 유비가 지도자로 추대될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인재들을 단결시켰기 때문이다. 2000년 시진핑은 한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삼국지 주인공 유비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평가했다. 시진핑의 리더십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혁명원로 시중 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정치적 박해를 당하며 사막이나 다름없는 오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1960년대 문화혁명기간에 부친이 마오쩌둥에게 밉보여 산시성으로 쫓겨간 것, 하지만 그는 과일 상자를 책상 삼아 공부하며 실력을 키웠고 결국 명문 칭화대에 입학했다.

공산당에 입당한 후에도 그는 엘리트 코스와 동떨어진 길을 걸었다. 라이벌 리커창 부총리가 젊은 시절부터 중앙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것과 달리 시진핑은 입당한 지 20년 가까이 푸젠성에서 농민들과 부대꼈다. 그가 막판에 리커창을 따돌리고 1인자로 올라선 데는 밑바닥에서 쌓은 내공이 큰 힘이 됐다. 전인자인 후진타오가 갖지 못한 경쟁력이다.

빈부격차가 위험수위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차세대 지도자로 신진핑을 낙점한 것은 그의 포용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시진핑이 8일 열린 제 18차 당 대회에서 비서장을 맡아 국가 주석 승계를 대내외에 과시한 가운데 후진타오는 이란 당대회에서 마지막 업무보고를 했다.

10년 집권을 마무리하는 후진타오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나뉜다.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려놓은 것은 뚜렸한 업적으로 남는다. 중국 국내총생산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두 자릿수로 성장해 일본마저 제쳐버렸다. 2008년엔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통해 중국의 성장을 세계에 각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간 개발격차와 빈부격차 확대는 고도성장에 대한 평가를 깍아 내린다. 외교 측면에선 경제력에 걸맞은 위상을 찾았다는 평가와 함께 너무 성급하게 도광양회(칼집에 칼날의 빛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르며 기다린다는 뜻)전략을 폐기했다는 비판으로 갈린다. 중동과 아프리카 문제에선 반 서방 동맹국들을 포섭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아시아에선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강공으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빌미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