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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부로 향하는 관문, 세인트루이스 아치

루지에나 2013. 4. 5. 07:09

서부로 향하는 관문, 세인트루이스 아치

"Meet me in St. Louis, Louis, meet me at the fair..."

주디 갈란드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영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 (Meet Me in St. Louis)는 제목 그대로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가 무대입니다. 영화는 1944년작이지만 영화 속의 시간은 1903~04년입니다.

이 도시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때는 바로 1904년이었을 겁니다. 이 해에 세계 박람회가 열렸고, 내친 김에 올림픽까지 열렸습니다. 1904년 제3회 올림픽은 원래 시카고가 따갔으나, 세인트루이스가 박람회 개최를 뒷심으로 하여 딴지를 걸며 물고늘어졌습니다. 결국 쿠베르탱은 결정을 뒤집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올림픽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 올림픽은 미국에서 처음 열린 것이기도 했고, 영어권 도시에서 처음 열린 것이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실시된 센서스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영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는 한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얽혀 진행되지만, 가장 큰 뼈대는 갑자기 뉴욕으로 이사를 가자는 아버지와 다양한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가족들의 갈등입니다. 가족의 의견은 대충 세인트루이스에 대한 사랑으로 집결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영화 속에서 노래 "Meet Me in St. Louis"로 반복됩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세인트루이스를 다녀왔습니다. 이 곳은 동부도, 서부도 아닌 중부 한복판인데다, 한국인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도 아니라서 한국인에게는 비교적 낯선 도시입니다. 우리에게 세인트루이스를 기억케 하는 것은 야구팀 카디널스, 150년 전통의 명문 사립 워싱턴 유니버시티,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로 대표되는 음악적 전통, 1927년에 대서양을 건넌 찰스 린드버그의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The Spirit of St. Louis)'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맥주 좋아하시는 분은 이 도시가 버드와이저의 본산이라는 점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지리적으로 보아 미국의 배꼽 정도에 해당합니다. 미국을 동서로 나누는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으며,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그 강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미국의 배꼽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03년에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작되는, 현재 미국 영토의 3분의 1쯤 되는 거대한 땅을 프랑스로부터 1천5백만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이른바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입니다.

그 직후인 1804년에, 미국에서 서부 개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루이스와 클라크가 서부를 가로질러 태평양까지 나가는 모험의 길을 떠난 기점도 세인트루이스 부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탐험 뒤, 많은 백인이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서부로 나아갔습니다. 세인트루이스는 서부 개척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 도시의 애칭인 '관문 도시(Gateway City)'라는 이름도 이런 역사 때문에 붙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장 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이 도시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입니다. 미시시피강 강변, 1800년대 초에 모피를 거래하던 장터 자리에 서 있는 이 터무니없이 크고 높은 조형물은 아닌 게 아니라 거대한 관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968년에 완공된 이 조형물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기념물이라는 명성을 달고 있습니다. 스테인레스 철제로 만들어진 이 조형물은 일단 그 크기에서 사람을 압도합니다. 아치의 높이는 192미터(630피트)이며, 밑변의 너비도 같은 192미터입니다. 그 크기는 거대한데, 아치 자체는 날렵합니다. 아치의 굵기가 그다지 굵지 않은 것이죠. 아치의 단면은 삼각형입니다.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스테인레스 블록을 양쪽에서 하나씩 쌓아올려 가운데를 잇는 형태로 시공했습니다. 경이로운 엔지니어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념물을 보기만 해서는 아쉽죠. 그래서 관광객을 끌고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그래야 돈도 벌구요. 아치가 날렵한데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라서,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으며 아치 속을 통해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처음에는 좀 믿기가 어렵습니다. 좁고도 높은 데를 오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텐데, 기울어진 구조상 엘리베이터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전망대를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치의 지하에는 서부 진출을 주제로 한 전시관과 영화관 두 개가 있습니다. 이 지하 공간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트램(tram), 즉 케이블로 끄는 작은 궤도차를 타는 승강장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수직 케이블차가 관광객을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끌고 가는 것이죠. 높이를 고려하면 상당히 공포스러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표를 내고 안내에 따라 승강장에 오면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뭔가를 타고 내리는 곳이 아니라 그저 공사가 덜 끝난 어수선한 지하실의 막다른 벽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탈것이 온다는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벽에 작은 쪽문 같은 것이 하나씩 늘어서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트램이 도착하면 열리는 문입니다. 이거, 믿고 타도 되는 것인지 의심이 되기 시작합니다.



트램이 도착하면 쪽문이 열립니다. 그 안은 다섯 명이 무릎을 맞대고 앉을 수 있는 매우 좁은 공간입니다. 폐소공포증이 있으신 분은 고생깨나 하실 듯한 공간입니다. 이렇게 다섯 명씩 한 칸에 타면 문이 닫히고 출발합니다.

트램은 약 3분에 걸쳐 덜거덕거리며 전망대를 향해 오릅니다. 내부로 향한 작은 유리창 밖으로는 철제 구조물이나 비상 계단 따위가 보이고, 차량은 심하게 덜그덕거리며, 어느 정도 높이를 오르고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차가 서고, 이윽고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전망대는 매우 좁고 간단합니다. 좁아지는 아치 꼭대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흔들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공포스러운데, 거기에 죽치고 앉아서 근무하는 안내원을 보면 좀 안심이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 포기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안내원을 보면 또 좀 걱정이 됩니다. 물론 지루해서 그러고 있겠지만요.



이 전망대에서는 창을 통해 서쪽으로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볼 수 있고(아래 첫 번째 사진) 동쪽으로는 미시시피강과 그 너머 일리노이 땅을 볼 수 있습니다(아래 두 번째 사진). 바로 발 밑을 보면 온몸이 쩌릿쩌릿한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 경기장인 부시 스타디움도 한 눈에 들어오는데, 마침 경기가 열리고 있어서 관중석의 붉은 색 물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뒤 다시 트램을 타고 비슷한 경로를 거쳐 땅으로 내려오면 게이트웨이 아치 관람이 끝납니다. 전체 관람 시간은 1시간 정도로 되어 있는데, 막상 오르내리는 시간보다는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깁니다. 전망대에 머무는 시간은 자기 마음입니다만, 오래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싶습니다.

1804년 5월에 서부로 출발한 루이스와 클라크는 천신만고 끝에 1년 반 만에 태평양에 도착하였으며, 1806년 9월에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왔습니다. 불과 20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이후 백인들은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서부로 서부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밀려든 이민자들에게는 무주공산의 땅에 깃발을 꽂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과정이었겠지만, 이미 그 땅에 살고 있었던 미국 원주민에게는 재앙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로는 일반 시민이 서부로 진출하는 주요 경로 역할을 했지만, 군대를 중심으로 한 미국 물리력이 서부를 장악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치밀한 공학적 계산을 토대로 하여 거대하게 지어진 아치와, 그 기저부 지하에 건설된 서부 진출사 박물관을 둘러보노라니, 이 조형물에 미국의 역사가 함축되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아치는 미국 서부 진출의 상징이 되어 미시시피 강변에 탄탄히 서 있습니다.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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