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자율 주어지면 망가지는 인간 하지만 조금의 자극만으로도 지혜로운 선택으로 옮겨타 그 행동과 자극을 연구해 마케팅·캠페인 등에 활용
#1. 무인도에 표류하던 물리학자와 화학자, 경제학자 앞에 파도를 타고 캔 수프 하나가 떠밀려왔다. 물리학자는 "돌멩이로 쳐서 캔을 따자"고 했고, 화학자는 "불을 지펴서 가열하자"고 했다. 경제학자는? "음, 여기 캔 따개가 있다고 가정(假定)해봅시다…." 그날 밤 경제학자는 수프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을 자야 했다.#2. 새 학기 첫날, 뜨거운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3편의 페이퍼를 제출받아 이번 학기 학점을 매긴다"고 말한다. 교실은 3곳. 학생들은 세 교실 모두 균질(均質)하다. 다만 마감 방식은 교실마다 다르게 내건다 (세 교실 모두 페이퍼를 일찍 낸다고 보너스 점수는 없다).
A교실(완전한 자율과 선택); "마감일이 따로 없다. 학기 마지막 날까지, 여러분 학생들이 자유롭고 지혜롭게 선택해서 제출하라."
B교실(자율적 제한); "각자 마감일 서약서를 자율적으로 정해서 적어 내라. '1번 페이퍼는 ○주차에, 2번 페이퍼는 ○주차에, 3번 페이퍼는 ○주차에 낸다'고 써내면 된다. 물론 페이퍼 3개를 몽땅 몰아서 학기 마지막날에 제출하겠다고 서약서를 써내도 된다. 단 일단 서약한 마감일보다 늦게 내면 약간의 감점을 줄 수 있다."
C교실(완전한 간섭과 제한); "세 페이퍼의 마감일은 각각 4주차, 8주차, 12주차이다. 늦으면 감점한다. 여러분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세 교실의 평균 학점은 어떻게 나왔을까? 예상 외로 (혹은 예상대로) 선택의 여지가 가장 넓었던 A교실 점수는 최악이었다. '완전한 간섭'으로 선택의 여지가 가장 좁았던 C교실 점수가 최고였다. B교실 학점은 중간이었다.
학생들의 행복감 순서도 비슷했다. '완전한 간섭'을 당했건만, C교실 학생들은 숙제가 밀리지 않아 평화로웠다. 완전한 자율과 선택이 주어진 A교실 학생들은 막판에 몰아치기 숙제를 하느라 고생에 찌들었다. B교실은 자율적 제한 덕분에 중간이었다. 인간은 자율과 선택이 주어지면 바보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닐텐데….
위의 이야기 '#1'은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Samuelson)의 유명한 유머다. 원만한 이론 전개를 위해, 분석하기 까다로운 영역은 '일단 이렇다고 치고…' 하는 식으로 '가정'하고 넘어가기 좋아하는 경제학의 특성을 꼬집은 것이다.
전통 경제학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가정(假定)은 바로 경제 주체인 인간에 관한 것이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는 이름하에 경제학은 '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이익을 위해 자신을 적절히 조절하고 단·장기적으로 두루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신(神)과 같은 인물'이라고 인간을 간주해왔다('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도모노 노리오 지음).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처럼 사고(思考)하고, IBM 컴퓨터처럼 뛰어나게 기억하며, 간디처럼 의지력을 발휘하는 존재'처럼 인간을 가정해온 것이다('넛지·Nudge'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지음).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듯이 결코 그렇지 않다. 경제학도 그것을 모른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과학이 때로 '진공(眞空) 속의 실험'을 통해 실제에 적용될 유익한 이론을 발전시키듯이, '진공 속의 인간'을 통해 현실에 활용할 경제학 이론을 진화시키려 했을 뿐이다. 경제학의 다른 가정들이 도전받는 와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의문 제기가 금기시됐던 성역(聖域)이 바로 '합리적 인간'의 전제(前提)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도 인간이 대세적, 총체적으로는 합리적일 것'이라고 본 기대와 전제가 균열하면서 발생했다. 인간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빈번하고, 더 현격하고, 더 일관적으로 합리성의 틀을 벗어난다는 목격과 분석이 쏟아진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합리성 이탈, 혹은 합리성 미흡을 체계적으로 연구해보자며 탄생한 접근이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Schumacher)는 이 상황을 "빼어난 구두 수선공이 되려면 이제 구두를 잘 만드는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며 발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비유했다. 여기서 '발'은 물론 인간을 뜻한다.
행동경제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뇌의 활동을 분석해 인간의 의사 결정을 이해하겠다는 연구 분야가 신경경제학이다. 호이젤(H�qusel) 박사의 신경마케팅은 이 신경경제학의 맥락에서 마케팅을 파고든 연구이다.
'#2' 스토리는 요사이 미국에서 각광받는 신예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Ariely) 듀크대 교수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실제로 행한 실험 내용이다. Weekly BIZ가 올해 1월 3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인터뷰했던 바로 그 학자다. 이 실험은 간단하지만, 행동경제학이 전하려는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실 이 실험 결과가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학창 시절을 거친 우리 모두가 알듯이, 자고로 학생이란 숙제를 미루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선택할 여지가 넓어질수록 인간은 더 높은 행복감과 성취를 일궈갈 것이라는 경제학의 굳은 믿음과는 확연히 어긋난다. 어떻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