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케네스 로고프 교수의 충고
"한국처럼 창조적 나라엔 은행보다 벤처캐피털 필요"
천재가 말했다 "분명 최악은 지났다 그러나 안심은 말라"
은행개혁 '볼커 지적' 새겨야…
"1980년대 은행을 봐라… 헤지펀드, 사모펀드…
금융도박을 안했는데도… 돈 벌었고 경제도 성장"…
中 10년내 금융위기 맞을 것… 어떤 국가도 금융위기 안 겪고…
긴 시간 경제성장 이룰순 없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 급등한 집값이 위기 바로미터…
- ▲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이 그리스와 같은 위기를 겪다 결국 부도가 나는 일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진한 기자
그는 체스(Chess) 천재다.
여섯살에 체스를 시작해 열세살에 잡지에 체스 신동으로 소개됐고,
예일대 재학 시절에는 체스 세계 최고수에게 부여되는 그랜드 마스터
(International Grand Master) 타이틀
(골프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처럼 영구 타이틀이다)도 땄다.
공부 때문에 방학 때만 틈틈이 체스를 했는데도 말이다.
'천재'라는 말을 그의 다른 이력에 붙이더라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27세에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코노미스트를 시작으로
48세에 IMF(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됐고,
현재 하버드대 교수이자 뉴욕 연준 및 스웨덴 중앙은행에 자문하는
세계적 금융 석학이다.
그의 이름은 케네스 로고프(Rogoff).
최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한 '글로벌 코리아 2010' 행사차 방한한 로고프 교수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국가 부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참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우선 "세계 경제가 또 다른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천재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분명 최악은 지났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더블딥(경제가 일시적 회복 후 다시 침체되는 현상)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조심성 많은 경제학자답게 단서를 달긴 했다.
앞으로 2~3년간 세계 경제가 또 한 번 2008~2009년과 같은
극심한 침체를 겪을 가능성도 여전히 15~20%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입에서 나온 15~20%란 수치는
거의 제로의 확률을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최악은 지났다고 보는 그의 논거가 재미있다.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최근의 위기가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낸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국내 미출간)〉
라는 책에서 지난 800년간 세계 66개국에서 일어났던 금융위기를
데이터에 근거해 정밀 분석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위기는 늘 재발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늘 위기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의 신호가 와도 '이번엔 다르겠지'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2~3년은 위기의 기억을 잊어버리기엔 너무 짧다.
그래서 단기간에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위기가 닥쳐도 그것은 10~15년 후의 일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안도를 하기에는 그의 표정이 꽤 심각했다.
"앞으로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그리스들을 보게 될 겁니다.
당장 내일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부도가 나는 국가들이 계속 나올 거예요."
그는 "과거 금융위기 역사를 볼 때 은행 시스템의 위기 뒤에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 외환위기를 비롯한 주요 금융위기 발생 후
3년 동안 해당 지역의 정부 부채가 평균 86% 급증했다.
그가 주장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국가들이 지금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늘렸던 경기 부양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전문가는 출구전략이 시기상조라고 주장,
첨예한 논쟁이 일고 있다.
로고프 교수는 지난달 경제학자 19명과 함께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영국 정부는 올해부터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글을 실었다.
그러자 조지프 스티글리츠(Stiglitz) 컬럼비아대 교수 등 경제학자 60명이
"영국 정부는 2011년까지는 재정 삭감을 유보해야 한다"는
반론을 파이낸셜타임스에 실었다.
로고프 교수는 "국가 부채가 GDP(국내총생산)의 90%를 넘게 되면
경제성장률이 1% 정도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그런데 지금
세계 여러 국가들은 부채가 과도한데도 경기 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걱정했다. 로고프 교수는 "현재의 작은 이익을 위해
미래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은 아주 오랫동안 느슨하게 유지돼야 합니다.
부채나 실업,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지만 아직 괜찮아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계 대부분 국가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줄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통화정책의 허리끈을 죄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과 반대로 가는 셈이죠."
- ▲ / 블룸버그
■위기는 반복된다
그의 책 〈이번은 다르다〉로 화제를 옮겼다.
과거 800년간 일어났던 금융위기를 객관적 데이터에 의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다.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입니까?
"금융위기가 어떤 특정 시기에, 특정 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늘 일어난다는 겁니다.
물론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만요.
1800년 이후 가장 자주 디폴트를 한 베네수엘라는 20년에 한 번꼴로
금융위기가 일어났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50~60년에 한 번씩 일어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죠."
그는 책을 펴낸 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항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발신자는 각국 재무장관이나 중앙은행 총재, 정치인들이었다.
내용은 비슷했다. "책에 우리가 ○○년에 디폴트했다고 썼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는 항의들이었다. 로고프 교수는 "그들은 '조정
(adjustment)'이라고 부르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디폴트인 경우였죠."
―하지만 사람들은 매번 금융위기가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최근 금융위기도 그랬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번 금융위기 역시 평범한 금융위기였습니다.
집값, 실업률 심지어 주식시장의 변화 역시 과거 수없이 반복됐던
금융위기와 같은 패턴이었고요."
66개국 금융위기를 분석한 그의 연구에 따르면 리먼 브러더스 파산
같은 은행발(發)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이후 GDP 하락세는 평균 1.9년 이어지는 데 그치지만,
부동산은 6년, 주식은 3.4년간 하락세가 이어졌고,
실업률은 평균 4.8년간 증가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크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이번 금융위기의 차이점이라면 그것이 2차 대전 이후 나타난
첫 번째 글로벌한 위기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스페인 같은 나라는 은행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반면,
다른 국가의 경우 일시적인 경기 쇼크나 저성장을 겪는 등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산과 부채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우리는 잘하
고 있고 일본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닮아가고 있어
요. 미국·영국·일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금융부문을 진정으
로 개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레버리징(deleveraging·투자와 부채를 줄이는 것)을 하지 않고
높은 레버리지를 유지했습니다.
일본의 경제 회복이 그렇게 오래 걸렸던 중요한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은행제도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 FRB에서 폴 볼커(Volcker)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는데
볼커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1980년대를 보라.
그때 은행들은 헤지펀드·사모펀드·금융 도박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은행들은 돈을 벌었고 경제도 성장했잖아."
그는 볼커의 지적이 매우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채무 위기가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만큼의 파괴력을
가질까요.
"글쎄요, 아닐 겁니다. 사실 디폴트는 중소 규모 국가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미국처럼 큰 국가에서 디폴트가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 영국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이 현 수준의 재정정책을 유지하려면 향후 5년간 지금보다
20~25%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합니다.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결정을 내릴 정치인은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당장 세금을 올리자고 하면 자리가 날아가겠죠. "
■"중국, 10년 내 금융위기 겪을 것"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출 부실이나 부동산 버블 같은 것들 말입니다.
"중국에서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데이터가 매우 부정확하고
그래서 정확한 과학적 분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2~3% 정도의 저성장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10% 내외의 성장을 하겠죠.
하지만 그 결과 앞으로 10년 내에 중국은 금융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요? 세계 경제가 종말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금융위기의 역사를 보면 급등하는 주택가격은 금융위기를
예고하는 최고의 지표입니다.
제가 800년 넘는 역사를 분석한 바로는 주택 지표는
오류 가능성이 가장 적은 지표였습니다.
물론 중국의 공식적인 레버리지(부채)는 정부가 관리할 만한 수준입니다만,
숨어 있는 레버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역사적 예를 보면, 레버리지가 매우 컸지만
아무도 몰랐던 경우가 아주 많거든요.
위기가 터진 뒤에야 사람들은 '아, 그렇게 많은 빚이 있었나'라고 말하죠.
분명한 것은 집값이 매년 2배로 급등할 경우 이 돈이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인들은 '괜찮아, 정부가 모든 걸 책임질 테니까'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합니다.
'중국 정부는 어디서 그 돈을 얻을까?'
지금 중국 정부는 땅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만약 토지 가격이 폭락하면 중국 정부 역시 돈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분명하고도 역사적인 사실은 어떤 국가도 금융위기를 겪지 않고
긴 시간 동안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점입니다."
―줄리아나(딸)가 올해 11살인데, 그녀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지금과 같은 위기가 올까요?
"우리가 바람직한 규제에 실패한다면 10~15년 안에 또 위기가 올 겁니다.
먼 훗날 같지만, 금융위기의 역사를 보면 그건 다소 빠른 것이죠.
'이번은 다르다'는 신드롬이 생기려면 25년 정도 걸리고,
우리가 잘 대처한다면 50~60년 혹은 100년 뒤에야 위기가 재발되니까요.
그런데 제가 '10~15년 후에 올 금융위기가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면
정치인들은 '이 양반, 우주에서 오셨나'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때가 되면 그 자리에 없을 테니까요.
제가 보기에 성공하는 국가의 비결은 좀 더 멀리 보는 데 있습니다.
성공하는 정치 시스템은 조급증을 이겨내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은 10년 전 외환위기 경험 덕분에 이번 위기에 더 잘 대응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네. 맞아요. 퀴즈를 하나 내죠.
1930년대 대공황 기간에 라틴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은 나라가 어딘 줄 아십니까? 바로 아르헨티나입니다.
이유는 그 직전에 디폴트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동안 위기가
다시 올 가능성은 적습니다."
■벤처캐피털로 '창의'를 육성하라
―체스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체스가 경제를 분석하는 데도 도움이 되나요?
"25년 전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제가 사용한 모델은 전략 모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게임 이론에 대해 잘 몰랐고 수학도 잘하지 못했지만
체스 덕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스트레스가 극도로 많은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이번이 3번째 한국 방문이죠?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한국에 오래 머문 적은 없지만 아시아 국가들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놀랍습니다.
제 아내는 방송국에 아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감독인데,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이야기해 주더군요.
한번은 중국 인민은행의 고위관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온통 한국이 화제였어요.
아이들이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한국처럼 창조적인 나라에선 은행보다 벤처캐피털이 필요합니다.
은행의 경우 담보를 요구하니까 사실상 이런 분야에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엔 매우 창의적인(hyper creative)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로서 유럽보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더 자주 가고 싶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런 창조적 분야를 육성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이나 세계화에
한국이 대응하는 데 좋은 전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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