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스크랩] 폴 오텔리니 인텔 CEO 인터뷰

루지에나 2010. 10. 9. 05:14

폴 오텔리니 인텔 CEO 인터뷰
"모든 상사들, 직원과 1대1 면담하는 '열린 문 정책(open door policy)' 실천"

폴 오텔리니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텔개발자 포럼에서 세계 최초로 22나노미터 공정을 통해 제조된 차세대 칩을 선보이고 있다. / 블룸버그뉴스

지난달 15일, 세계 증시는 '인텔 효과'에 휩싸였다. 세계 1위 반도체업체 인텔이 금융위기를 딛고 불사조처럼 일어선 것이다. 인텔은 3분기 매출 94억달러에, 순이익 19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비 감소율은 각각 -8%, -8.1%. 거의 정상치를 회복한 수준이다. 게다가 인텔은 4분기 매출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의 4분기 예상 매출은 95억달러였지만, 인텔은 97억~105억달러를 예상치로 내놓았다. 인텔의 주가는 이날 한때 6% 이상 치솟았다.

세계 투자자들이 인텔을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텔이 마이크로프로세서(CPU) 칩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은 PC 및 전자 기기의 핵심 부품이다. 인텔의 실적은 그대로 세계 PC 및 전자 기기의 판매량을 반영한다.

게다가 인텔은 위기를 극복하며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더욱 확고하게 틀어쥐었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텔의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칩 시장점유율은 올 3분기 80.6%를 기록, 15분기 만에 최고치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텔이 애플·구글 등과 함께 놀라운 실적(surprisingly robust profit)으로 IT 부활을 이끌고 있다"고 평했다.

물론 인텔이 창업할 때부터 세계적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8년 창업 당시 작은 벤처기업에 불과했다. 그리고 41년의 길지 않은 역사 동안 수없이 위기를 거쳤다.

그럴 때마다 인텔은 특유의 적응력으로 생사(生死)의 고비를 넘겨왔다. 로버트 버겔먼(Burgelman)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전략은 운명이다>(2008, 스마트비즈니스)에서 "돌이켜보면 인텔은 탁월한 적응력으로 성공했다"고 소개했을 정도다.

위기를 돌파하는 인텔의 놀라운 적응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WeeklyBIZ는 폴 오텔리니(Otellini) 인텔 최고경영자(CEO)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텔의 경쟁력을 직접 물었다. 오텔리니 CEO의 답은 바로 '기업문화'였다. 그는 상세한 설명과 예를 들며, 인텔의 적응력이 어떻게 위기를 만날 때마다 진화돼 왔는지를 설명했다.

"이 분야 산업은 사람을 편집광(Paranoid)으로 만든다. 해마다 (프로세서 칩) 제품 성능은 향상되는데, 반대로 가격은 떨어진다. 세대가 지나면서 기술 개발에는 돈이 더욱 많이 든다. 기술 혁신으로 참신한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내 제품은 순식간에 값싼 소모품이 되고 만다."

그는 "그럼에도 우리가 기술 혁신을 이뤄낸 것은 특유의 '수평적 문화'로 각종 장애물을 뛰어넘어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텔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수평적 문화'는 과연 무엇일까?

인텔의 역사는 크게 3시기로 구분된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1968~1985년),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 (1985~1998년),

 

그리고 ‘인터넷 기반 구축 기업’(1998년 이후)이다.

 

주력 제품이 메모리 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터넷 관련 각종 반도체 부품 및 완제품으로 바뀌어 왔다는 뜻이다.

각 시대는 최고경영자(CEO)의 변화와도 거의 맞물린다.

 

첫 번째 시기는 고든 무어(1968~1987년),

 

두 번째 시기는 앤디 그로브(1987~1998년),

 

세 번째 시기는 크레이그 배럿(1998~ 2005년)과

 

               폴 오텔리니(2005년~현재)

 

의 CEO재임 시기와 거의 유사하다. 그렇게 한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인텔은 사업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격변을 겪었다.

이런 격변에 대처하는 인텔의 리더십은 특이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중간 관리자를 비롯한 직원들의 의사가 대폭 반영된다. 이른바 ‘수평적 문화’다.

가령 1980년대 중반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 퇴출을 고민할 때 당시 CEO 고든 무어는 망설였다. 한 고위 간부는 “인텔에서 DRAM을 포기하는 것은 포드사가 차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위 경영자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일부 중간경영자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공장 관계자들은 점차적으로 DRAM 대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 비중을 늘렸다. 사내 자원 관리자들도 DRAM 생산에 대한 자원 배분을 뒤로 미뤘다. 이들은 인텔의 기존 사업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윤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으로 회사를 ‘운전’해갔다. 로버트 버겔만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인텔이 공개적 토론과 지식의 힘을 직위로 억누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폴 오텔리니 CEO는 개방적이고 평등을 중시하는 문화를 인텔의 근본 저력으로 꼽았다. “인텔은 수평적 문화를 통해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더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폴 오텔리니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웹 2.0 서밋에서 강연하고 있다. 오텔리니 CEO는 최근 경제위기를 비롯해 각종 위기를 딛고 극복해온 인텔의 저력으로 ‘수평적인 문화’를 꼽았다. / 블룸버그뉴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인텔이 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해 선전하고 있다. 비결이 무엇인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시련이지만, 우리에게는 첫 위기가 아니다. 2003년 당시, 우리는 AMD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속도(클록)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무선 인터넷 기능을 탑재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관련 기술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그 결정은 미래를 예측한 것이었고, 결국 ‘센트리노’라는 이름의 제품이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연구 개발 체제도 더 빠르게 재편했다. 3년 개발주기가 2년으로 줄어 기술 선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텐데, 직원들을 어떻게 분발시키는가?

“직원들이 평등하게 회사 문제를 토론하는 문화를 심으려고 노력한다. 최고 경영자를 포함해 인텔의 모든 직원은 문이 없는 사무공간인 ‘큐비클(cubicle)’에서 근무한다. 모든 상사들이 직원과의 1대1 면담을 받아주는 ‘열린 문 정책(open door policy)’을 실천한다. 최전선에서 일하는 젊은 기술자들의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듣는 것이다. 기술 혁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술 혁신 없이는 인텔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출발 자체가 벤처 기업이다.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처음부터 회사 조직을 ‘수평’으로 유지하려고 애썼다.”

―‘수평적 문화’가 불필요한 대립을 부르거나, 의사결정을 지체시키지 않는가?

“논쟁은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는 생산적인 논쟁을 ‘건설적인 대립(constructive confrontation)’이라고 부른다. 신입 사원들이 처음 입사할 때부터 건설적인 대립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다만 건설적인 대립의 필수 규정 중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이성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인텔은 평등하면서도 나태해지지 않도록, 엄격한 자기 규율을 강조한다. 한 예로 인텔은 1971년부터 1987년까지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아침 8시 5분 이후에 출근하면 서명하는 ‘지각명부’ 제도를 운영했다. 평등한 만큼 ‘책임’을 강조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진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앤디 그로브 전 인텔 CEO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동의하는가?

“물론이다. 그의 철학은 인텔 곳곳에 스며 있다. 인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제조업체지만, 잠재적 경쟁자들이 숱하게 많다. 우리는 대규모 반도체 기업만을 경쟁자로 보지 않는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라면 누구든 잠재적 도전자로 본다. 이런 경쟁이야말로 인텔이 선도적 위치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경쟁상대와 비교하며 스스로 채찍질한다”

―인텔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글로벌 경제위기다. 시련의 시기이지만, 이번 경기 침체를 우리 전략의 실행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방법은 투자다. 다른 기업들이 전략을 축소하거나 재고할 때, 우리는 새 시장으로 예상되는 분야에 더욱 투자할 것이다. 그러면 오랫동안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경쟁력과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 지난 2월에 자사 공장에 단일 공정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 선도적 기술(32나노 공정 기술)로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도록 미국 뉴멕시코, 애리조나, 오리건 공장에 7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말은 쉽지만 불황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IT 부문에서 투자해야 한다면 어떤 분야가 적절하겠는가?

“IT 투자의 핵심분야는 ▲교육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헬스케어 ▲청정 에너지로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교육 시스템 분야에 투자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세계 시장에서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들고, 학교 시스템의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도 중요한 투자 분야다. 상업 활동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영국 조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 따르면, 광대역 설치가 7%만 증가해도 경제적으로 연간 1340억 달러의 직접적 효과가 나타나고 약 2400만 개의 일자리가 유지된다. 청정에너지 투자도 유망하다. 가령 각국 전력망 인프라에 지능형 기술과 통신 기능을 추가하면, 분산된 에너지원을 통합할 수 있다. 고층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 전체 전기 소모량의 76%가 고층 건물에서 발생한다. 앞으로 냉난방·환기·이산화탄소 배출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빌딩 디자인이 큰 사업이 될 것이다. 환자들의 기록을 전자화하고,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환자에 대한 진료 활동을 분석하는 전자건강기록(electronic health records) 역시 주목할만한 투자 대상이다. IT 기업들이 주시해온 헬스케어 부문을 디지털화하는 첫걸음이다.”

―인텔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2006년 발 빠르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왜 그랬나?

“CEO의 주된 임무는 남들보다 앞서 변화의 필요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2006년 인텔은 높은 수익을 냈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산업, 그리고 경제가 변화할 것이라는 조짐을 감지했다. 내 인생에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해고, 조직 축소, 사업 부문 매각으로 2만여명 가까운 직원들을 잃었다. 밤잠도 제대로 못 잤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옳은 일이었다. 생산성은 높아졌고 제품 생산량도 늘었다. 2006년 구조조정 이후 올해 말까지 인텔이 절감한 비용이 약 40억달러에 이른다.”

―향후 IT 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올해 기업 소비자 시장이 특히 위축됐다. 대개 기업의 PC 구매가 전체 PC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일반 소비자시장이 더 좋다. 따라서 노트북 및 모바일 PC 같은 소비자 제품을 위한 다양한 프로세서들을 출시하고자 한다. 기업 시장의 경우, 인텔 최신 기술들과 얼마 전 출시된 윈도7이 결합돼 기업의 구형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데 강력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경제 전반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그건 세계 경제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다만 우리가 여러 가지 실험을 해야 하는 격동의 시기에 처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대공황에 관한 책을 두 권 읽었다. 하나는 금융 전문가가 썼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썼다. 그런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출된 직후인 1932년과 1933년 부분을 읽어보면, 두 저자 모두 당시 대단한 실험들이 있었다고 했다. 현재 상황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하면서도, 여러 노력을 하고, 결국엔 답을 찾아내거나 시장이 다시 잘 움직이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지시한 대로 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부하직원에게 자율성을 주는 편인가? 아니면 가령 ‘이 건은 내가 지시한 대로 하라’는 말을 1년에 몇 번 정도 하는가?

“인텔은 앤디 그로브 전 회장이 도입한 목표 관리제(management by objectives)에 따라 운영된다. 전 직원은 매 분기 자신의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지시하지는 않는다. 최첨단 기술을 만들어 내려면 분명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틀에 박힌 방식으로는 할 수 없다. ‘지시한 대로 하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은 전혀 없다. 그런 말은 인텔 문화와도 맞지 않는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MBA(경영학석사)를 거쳤다. 기술을 중시하는 인텔 조직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신이 생각하는 리더십의 원칙은 무엇인가?

“리더십 원칙을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MBA 학위를 취득하고 며칠 뒤인 1974년 7월, 인텔 재무 부서에 입사했다. 당시 반도체 칩 업계는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었다. 인텔 주가가 3분의 1로 떨어졌다. 첫 출근날, 인텔은 직원 10%를 해고했다. 그때 기존 직원을 해고하는 것보다 우리 같은 신입사원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직원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고, 지금까지 지킨다. 크로스 트레이닝(cross-training)과 사내 평행 이동(lateral move) 또한 리더십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영업, 마케팅, 관리직을 두루 거쳤다. 재무 부서를 떠나 IBM과의 초기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 등을 이끌었다. 직장 생활 내내 주변 사람들에게 배울 기회가 많았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출처 : 폴 오텔리니 인텔 CEO 인터뷰
글쓴이 : 작은도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