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마거릿 대처

루지에나 2014. 2. 1. 00:19

2, 마거릿 대처

장기적 안목 뛰어난 비전 제시 형 리더

확고한 비전으로 국가를 다스린 대표적인 케이스로 대처는 비전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틀림없이 망한다. 목적도 사는 보람도 없이 그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영설로 국민들의 안일한 사상에 돌을 던져 깨우치기 시작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마거릿 대처는 영국에서 배출된 수상 가운데 ~ism 이 붙는 유일한 수상이다. 영국 여성 최초의 보수당 당수이자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인 대처는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철의 여인으로 통한다. 긴축 재정으로 경제부흥을 이루고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정부를 운영하면서 1979년부터 1990년까지 3차례 장기 집권을 한 여성 수상(대통령)이다. 대처는 식료품 집 딸로 자란 평범한 여자 아이였다. 다만 정치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 알프레드는 대처가 4살 되던 해에 무소속 시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때문에 대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업과 종교, 정치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 대처는 보수당 학생회에 가입해 빠짐없는 출석률을 보였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터 정치와 경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화학을 공부했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을 수 없어 쌍둥이를 가진 몸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원의원 후보 두 차례 낙방 끝에 보수당 입후보자로 결정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영국은 철의 여인을 원한다.

당시 영국은 히스 수상이 엉뚱한 정책으로 수상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해롤드 윌슨이 이끄는 노동당이 탄생, 이에 대응할 인물은 보수당의 키스 조지프뿐이었다. 당시 대처는 그가 이끄는 정책연구센터 부소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프의 연설이 문제가 돼 입후보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자 대처는 그가 나가지 않겠다면 자신이 나가겠다고 당찬 발언을 했다. 우연히 찾아온 당권 도전 기회였지만 대처가 놓칠 리 없었다. 비전을 잃은 사회는 망한다는 내용으로 비전을 강조하며 취임 연설을 했고 최초로 보수당 당수로 선출했다. 대처가 철의 여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때부터인데 1975년 켄싱턴 타운 홀에서 소련에 대한 비난과 공격의 연설을 하고 난 후 소련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라는 공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대처는 영국은 철의 여인을 원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펼쳤다. 경제회생을 위한 감세정책, 노조 파워 무력화를 위한 법과 질서 확립, 근로의욕 고취 등을 강조하며 총선거에 나간 대처는 드디어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 자리에 올랐다.

대처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행을 제시하며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대처가 수상에 오른 1979년 영국 경제는 병들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처는 하나의 방침을 내세우면 그것을 일관되게 실행하는 실행 형, 추진 형 정치가다. 일의 가능성을 철저히 점검하고 검토한 후 전진하는 돌격 대장이자 심사숙고하는 사령관이었다.

당시는 늘어만 가는 재정적자와 끊이지 않는 노사분규로 영국병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때였다. 대처가 가장 먼저 정책의 중심목표로 설정한 것은 노조의 정상화다. 노조의 힘을 줄이는 것이 영국 재생의 길이라 확신하고 그들을 굴복시키는 힘을 획득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탄광노조 대결 시 이미 파업과 장기전을 예상하고 석탄을 비축해 에너지지원이 끊기는 데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서 임했다. 치밀하게 준비한 대처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결국 탄광노조를 굴복시키고 대처의 작전은 승리했다.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정책 성공은 경제부흥 정책이다. 대처는 성공이 비밀은 꼭 한 단어, 기업 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구조개혁을 통해 기업을 살려 사회주의 정책으로 치닫는 영국을 대영제국의 자리로 다시 올려놓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에도 대처는 물러섬이 없는 소신을 보여주었다. 국가의 임무가 기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번성할 수 있도록 적합한 법의 틀을 만들어주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대처의 이러한 구조개혁은 뉴질랜드, 아일랜드가 이어서 따랐으며 OECD 는 회원국들에게 대처의 길을 따르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저성장과 고실업, 저생산성과 고임금, 노조천국에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데다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존성, 수준 낮은 자유 시장 경제에 깊숙이 빠져 있던 영국을 대처만의 강력한 지도력과 능란한 외교정책으로 평정시킨 것이다. 지도자에게 비전 제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확고한 비전으로 국가를 다스림 대표적인 케이스로 그는 비전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틀림없이 망한다. 목적도 사는 보람도 없이 그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연설로 국민들의 안일한 사상에 돌을 던져 깨우치기 시작했다.

영국은 옛 대영제국처럼 영화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비전과 사회주의를 몰아내겠다는 비전과 사회주의를 몰아내겠다는 이 두 가지 확고한 비전은 임기 3번을 맞는 동안 변함없이 지켜오면서 세께 역사를 바꿔놓았다.

솔선수범과 덕을 갖춘 영국의 어머니

남편의 아침상을 손수 차리는 검소함과 소박함에서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께 물려받은 가정의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수상관저에서 일하는 직원을 하나도 두지 않았을 마큼 부지런했고 자상함과 부드러움을 갖춘 영국의 보통 어머니 모습이라는 게 측근들의 진언이다.

대처는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에도 철저함을 보였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야당 관료시절부터 모든 서류를 자신이 두 번 이상 검토하지 않고 남에게 절대 충고하지 않았다. 또한 솔선수범을 강조하는 리더의 면모를 보였다. 경제부흥 정책을 펼치는 데 국민에게만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각료들과 똑같은 봉급을 받겠다는 그의 의지를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포클랜드 전쟁 후 대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2백 50여 명의 영국군 희생자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쓴 것이다. 참모들이 작성한 편지에 자필 사인을 인쇄하는 형식이 나닌 한통, 한통 어머니와 아내 입장에서 직접 쓴 것이다. 위엄을 갖춘 치밀한 혁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겸허, 관용, 신뢰로 부하를 배려하는 리더십 덕목을 골고루 갖춘 여걸이었다. 대처는 3선 후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판단, 권력에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안 정치가로서도 훌륭한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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