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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과 일출 산행 대담

루지에나 2014. 2. 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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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과 일출 산행 대담

나를 보수라고 평가하는데 선입견일 뿐

젊어서는 반골 소릴 들어

 

 

새벽 6시 어둑했다. 강원도 미시령 옛길에 있는 화암사 일주문으로 흙바람이 불어쳤다. 날씨가 이렇게 포근해서야 신년 일출은 추울수록 보는 맛이 나는데 바람이라도 세계 불어주니 다행이군요. 양승태(66) 대법원장은 스마트폰으로 산행 루트를 확인했다. 두 시간 코스인데 그는 전날 밤 야영을 했다. 텐트를 치고 침낭 속에서 잠들었다. 이런 번거로움을 그는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의 집에는 텐트만 9개가 있다고 했다. 고교 때부터 등산 서클에 가입해 산을 다녔지요. 대법관 시절에는 법원산악회 회장을 맡아 백두대간을 종주했습니다. 요즘도 한두 달에 한 번은 야영 ksgod을 하지요

 

- 대법원장이면 골프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골프는 어쩌다 한 번 칠뿐이고 등산 말고 별로 할 게 없어요. 대법원장이 되면 아무나 못 어울리니 외롭잖아요. 공관은 거의 창살 없는 교도소입니다.

 

아무나 못 어울리는 것은 오해를 살까 봐 그런가요?

그전에 함께 산에 다니던 사시 동기 변호사가 있었어요. 대법원장이 된 뒤로는 못 갔어요. 공정하고 정실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인상이 흔들리면 법관은 더 이상 재판할 수가 없어요.

 

법관은 인간관계에서 외로워야 한다고 봅니까?

법관의 비애지요, 내게는 고교 친구들밖에 없어요. 사회에서 사귄 친구들은 얼마 안 됩니다. 법관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함부로 많이 어울려서는 안 된다. 는 걸 은연중에 체득합니다. 법관이 사교 법위가 넓으면 저 사람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내부 분위기가 있어요. 소위 법관 체질이 아니라는 거죠.

 

세상 사람들은 법관도 어떤 인맥에 의해 혹은 힘 가진 이들의 로비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법관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편견이겠지요.

 

법원은 사회정의의 마지막 보루이죠. 법원까지 가도 안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기대 할 데가 없지요.

이 때문에 법관의 처신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현직에서 같이 친하게 지내던 사시 동기가 법원을 떠나면 멀어지게 돼요. 이런 게 인간적으로 힘이 듭니다.

 

가령 변호사를 개업한 동료로부터 전화가 오면 어떻게 응하지요?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변호사 개업하고 법원 동료에게 접근하지 않지요. 실제 그런 풍토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판사직을 그만둘 때면 남은 동료에게 이제 연락도 못 하겠네 하고 떠납니다.

가파른 등산로에는 눈이 얼어붙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 불빛이 길게 이어졌다. 이날 산행에는 이인복 대법관(중앙 선거관리 위원장)을 비롯해 전구그이 법원에서 판사 및 직원 220여명이 참여했다. 법대의 판사 한 명만 봐도 검이 나는데 이렇게 단체로 몰려오면 산도 주눅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사회에서 법관이 되는 순간 영향력이나 경제적 면에서 모두 보장되지요?

얼마 전 신임 법관 임명식 때 안정된 삶이나 편안함을 추구하면 법관 자격이 없다. 그 자리에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법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뭐라고 봅니까?

국민이 바라는 상을 갖추는 겁니다. 재판받는 사람들이 이런 판사가 재판하면 승복하겠다는 판사가 돼야 하는 거죠. 어떤 판사를 원하겠습니까. 재판 당사자에게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말 지혜롭고 경륜을 갖춘 판사가 아닐까요.

 

국민이 바라는 상을 갖추는 겁니다. 재판받는 사람들이 이런 판사가 재판하면 승복하겠다는 판사가 돼야 하는 거죠. 어떤 판사를 원하겠습니까. 재판 당사자에게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말 지혜롭고 경륜을 갖춘 판사가 아닐까요?

 

법전과 사건 기록에만 파묻혀 지내는데?

판사는 법률 기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판사보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많아요. 조세법은 세무사, 특허법은 변리사가 판사보다 훨씬 잘 알 겁니다. 국민이 판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런 전문 지식만이 아닐 겁니다. 균형 잡힌 판단을 할 줄 아는 제널럴 리스트(다방면에 지식을 가진 사람)가 돼야 합니다. 재판 당사자들을 승복하게 하는 따뜻한 인간미도 있어야 합니다.

 

억울한 사람이 많은지, 재판에 지고서 승복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재판에서 이기면 명 판결이라고 하고 지면 엉터리라고 판사를 욕하죠.

 

판사가 담당 사건 기록도 다 안 보고 재판한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건 기록을 다 읽었고 서로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걸 재판 당사자들에게 알게 해주라고 했어요. 이게 법정중심주의입니다. 그러다 보니 법정에서 판사의 말이 많아져요. 막말이 나오는 것도 그 부작용의 하나입니다. 재판 당사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다 싶으면 막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과거처럼 몇 마디 안하고 판결만 내리면 막말이 나올 틈이 없겠지요.

 

법정에서 자신이 가장 높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요?

평균 상식에 벗어난 판사들이 있긴 합니다. 변명 같지만 미국에는 더 많습니다. 미국이 법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판사들이 징계 받은 내용이 떠 있어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판사도 있구나 하고 여길 뿐 판사들은 다 이렇다고 하지 않습니다.

 

부러진 화살. 도가니, 같은 영화로 한때 법원이 수난을 당했지요?

나는 대법관에서 퇴임하면서 법원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글재주는 안 되지만 그런 소설과 영화는 정말 과장되고 왜곡됐기 때문이죠. 왜 과장하죠? 실제 있는 그대로 법원 내부 모습을 보여줘도 충분히 그적일 텐데 말이죠.

 

우리의 법 상식으로 납득이 안 되는 튀는 판결이 나올 때가 있더군요.

재판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요. 그래서 상소제도가 있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정치, 사회문제와 관련된 판결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면 잘못된 판결이라고 매도합니다. 특히 법관 개인을 비판합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어떤 판결이 있음 뒤 법관을 비난하는 기사나 논평은 없습니다. 판결의 취지를 설명해주고 혹 법리 적용에 문제가 있다면 전문가의 코멘트를 싣는 식입니다.

 

젊은 판사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판결을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보소 언론은 젊은 법관들의 판결에 가끔 불만을 표시하지요. 세대 간에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법관들은 그래도 그 세대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편입니다.

 

대법원장께서도 젊은 판사 시절이 있었겠지요?

나도 20대 후반에 판사를 했지요. 그때는 자신만만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 재판받는 사람이 나를 지혜로운 판사로 여겼을까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면 법관으로 바로 임용되는 현행 제도는 이번에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단계적으로 3, 5, 10년씩의 법조인 경력이 있어야 임용됩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법원의 판결 경향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정권이 바뀌어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서글픕니다. 가령 경제인에 대한 중형 선고는 하루 이틀 논의되어온 얘기가 아닙니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비판해왔고요. 그런데 마치 정권이 바뀌어 경제범좌 양형이 높아졌다고들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와 비교해 지금 대법원이 너무 보수화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나를 두고 보수라고 평가하는데 그건 선입견일 뿐입니다.

 

-그게 선입견이라면 본인의 성향은요?

젊은 시절 나는 선배 판사들로부터 반골이라는 소릴 들었어요. 나는 호주제가 휘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처음 했던 판사였지요.

 

하지만 대법원장에 취임한 뒤로 과거에 비해 진보적 판결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뿐이지 지금도 진보적 판결이 많이 나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헬스케어 법안에 대해 위헌 여부를 심리했지요. 미국 대법관들도 정파와 이념에 휘둘립니다. 하지만 보수파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정치적 신조 때문에 법의 기본 정신을 따지지 않으면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할 것이라며 반대표를 던졌어요. 그렇게 해서 법안이 4:5로 합헌 결론이 난 겁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로버츠가 법안을 살렸고 법안을 살린 것이 대법원을 사렸다고 논평했지요.

 

대법원장께서 생각하는 사법의 지향점은요?

사법의 목적은 사회 안정입니다. 사회가 안정돼야 앞날에 대해 예측이 가능하고 자기 삶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는 법이 개인을 얽어매고 자유를 속박하는 것에는 절대 반대입니다.

 

사회 안정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변화 흐름을 열어줘야 하지 않나요?

그게 대법원장이 된 뒤로 내가 강조해온 것입니다. 절대 과거에 얽매여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 위주로 보지 말고 국민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과거에 해온 그대로 하는 것이 제일 쉬운 것이지요. 하지만 변화를 따른다고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어요. 사회 안정을 위핸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요.

 

2011년 초 대법관에서 퇴임하기 직전에 다시는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압니다.

그걸 못 지킨 것을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퇴임할 때가 정말 좋았어요. 바로 다음 날 백담사에 갔으니까요. 거기서 보름간 머물며 설악산을 다녔고 네팔에 가서는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봉 둘레를 트레킹 했어요. 그 뒤 친구들과 미국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가 열흘 만에 중도 귀국하게 됐어요.

법관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만족하지요, 다만 다른 길도 가봐야 인생이 풍요로워지는데, 나는 법권 생활을 36년 했어요. 안 보이던 친구가 찾아오면 이 친구 무슨 속셈이 있나 경계합니다. 순수하게 사귀지를 못하는 거죠. 절제와 경계의 나날이었습니다. 여기서 해방된다는 마음이었지요. 내 인생의 황금기는 퇴임 뒤 자유인으로 지낸 그 6개월이었어요. 산행 코스의 종점이 신선대에 도착했다. 강풍으로 몸을 바로 세우기조차 어려웠다. 숱한 장갑, 모자, 목도리들이 고대로 그를 가운데 세우고 기념촬영을 했다. 서른 번 이상 모델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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