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딜레마에 봉착한 아베 정권
지난해 순조롭게 진행돼 온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정책인 아베 노믹스가 암초에 부딪혔다. 아베 노믹스의 핵심 수단인 엔 약세를 앞으로 더 이끌고 가야 할지. 이 정도 선에서 멈춰야 할지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속적인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엔 약세를 유도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무역수지는 물론 경상수지마저 적자 구조가 고착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금 경상수지 적자가 다시 엔 약세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한편 내수경기에서는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이 초래되고 있다. 이는 결국 재정악화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금융 당국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달러당 엔화 값은 아베 정권이 출발하기 이전인 2012년 9월 말 75엔을 최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아베 정권이 출발한 이후 중앙은행이 2년간 134조 엔에 달하는 무차별 자금 살포를 결정하면서 100엔 대로 급락했고 이후 주춤하다. 지난해 11월 초순 이후 재 하락 기조를 보이고 있다.
엔저로 경상수지 적자. 금리 상승까지 우려
문제는 이로 인해 무역수지가 20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 갔을 뿐 아니라 경상수지 적자까지 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역대 최대 규모인 5928억 엔(약 6조원)의 적자를 냈다. 2개월 연속 적자이며 당초 시장에서 적자 전망치인 3689억 엔을 크게 상회하는 규모이다.
이번 적자는 엔 약세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무역수지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6% 증가했지만 수입이 22.1%나 늘어난 6조 8856억 엔을 기록하면서 1조 2543억 엔의 적자를 냈다. 엔저로 연료 수입액이 급증한 탓이다.
게다가 그동안은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1조 엔 이상 나오던 소득수지 흑자로 보충해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11월에는 9002억 엔에 그쳤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배당과 이자 수익의 규모가 엔 약세 때문에 감소한 것이다.
경상수지가 곧바로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이미 일본 기업들은 엔고 시절에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거점을 대거 옮겨 놨다. 엔 약세가 이뤄진다고 해도 과거보다 수출 증대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수록 일본 경제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우선 수입 물량을 위한 환전 수요 때문에라도 경상수지 적자는 엔 약세를 부추긴다. 경상수지와 엔 약세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국면이다.
내수에서는 물가와 금리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수입 증가와 수입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민간 부문에서는 구매력 저하, 기업들에게는 채산성 악화의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또 국가 전체적으로 돈을 버는 힘이 떨어졌다는 의미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외부에서 빌려 와서 사용해야 한다.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당연히 조달금리가 올라간다.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일본 경제에서 금리 상승은 독과 마찬가지이다. 이미 일본 정부의 재정부채는 1000조 엔을 넘어서서 연간 GDP의 230% 이상 규모가 됐다. 선진국 최악의 재정부채이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간다면 일본의 재정부채 문제는 더욱 부각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본 금융 당국이 엔저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달러당 엔화 가치가 10% 상승하면 3년 후 수출은 2% 증가, 국내 총 생산은 0.2%의 증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즈호 경제 연구소도 엔화 가치가 100엔에서 110엔으로 떨어지면 GDP0.3% 증가, 120엔까지 가면 0.4%의 증가 효과가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특히 오는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국내 소비가 급격히 냉각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일본은행은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추가 양적완화를 실시할지 여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여차하면 돈을 더 풀어서라도 경기회복이 단기간에 멈추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엔 약세로 연결된다.
원전 재가동, 엔화 값 향배에 변수
향후 엔화의 향배에 원전 재가동 문제가 복잡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일본의 원전이 재가동에 들어간다면 엔화 값에는 상승 요인이 된다. 에너지 수입 물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엔화 환전 수요가 줄어든다. 무역수지 적자도 감소하면서 엔 약세와의 악순환 고리도 약해진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권이 원전 재가동에 들어가기에 여건이 만만치 않다. 2월 예정인 도쿄도지사 선거에는 아베 정권의 입지를 흔들 수 있는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가 원전제로의 기치를 내걸고 출마했다. 일본 내에서 아직도 인기가 많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어 당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호소카와 전 총리가 일본 내 반 원전 분위기를 높여 높다 면 아베 정권 입장에서는 원전 재가동 카드를 꺼내 들기가 쉽지 않다. 만약 아베 정권이 원전재가동을 포기할 경우 엔화는 강세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대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의 여지도 남아 있다. 원전 재가동에 실패할 경우 일본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극대화 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엔 약세 기조를 그대로 용인해서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더욱 악화된다면 일본 내 여론은 원전 제로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닛케이 베리타스는 신년 초 특집에서 일본 내 68명의 금융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다수의 의견은 상반기는 엔 약세가 주춤해지며 한때 90엔대 후반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다시 하락세로 반전, 연말에는 111엔까지 떨어진다는 예측이다. 올해 엔화와 아베 노믹스의 향배는 단순한 경제 논리뿐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함수까지 가세하며 더욱 어려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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