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인공지능
알파고 시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과 기계의 세기의 대결은 충격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역사적인 대결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올해 3월은 아마도 인공지능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대국의 결과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큰 충격을 안겼다. 그 충격의 강조와 폭은 깊고도 넓어서 대국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담론을 쏟아 냈다. 이제는 충격과 흥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알파고의 등장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알파고가 압도적인 기량으로 이세돌 9단을 이기자 어떤 이는 이번 대회가 정상적인 바둑 대회가 아니라거나 공정하지 않다거나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라거나 전 인류의 승리라거나 알파고는 그저 계산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기계가 인간보다 능력이 더 나은 게 사실인데 뭐가 그리 새롭다고 호들갑이냐는 호통도 들린다.
좀 솔질해지자. 이번 대회는 바둑 대회가 맞다. 나름 공정했고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인 것도 맞다. 인간 대 인간이거나 기계 대 기계의 대결은 아니지 않은가. 전 인류의 승리? 올림픽에서 상대 선수가 이겨도 전 인류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할 셈인가. 그리고 알파고는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다. 단지 힘 잘 쓰는 기계는 더더욱 아니다. 아무리 화려한 관념적 몽상을 나열하더라도 알파고라는 뛰어난 인공지능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알파고 충격,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한 마디로 말해서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세계 최고수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올해 알파고의 충격으로부터 그 어떤 교훈이나 유산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식의 회피나 외면이 왜 문제인가.
첫째, 어차피 알파고도 더 빠른 더 나은 계산기일 뿐 아니냐고 치부하기에는 알파고 이전과 이후의 단절이 너무나 크다. 적어도 알파고는 스스로가 상황을 인지하고 학습을 하며 적절한 판단을 내린다. 지금까지 그 어떤 계산기도 그러지 못했거나 알파고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단지 주어진 계산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하느냐, 예컨대 파이 값을 소수점아래 몇 자리까지 누가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느냐 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의 바둑 프로그램은 몬테키를로 트리 탐색이라는 방식을 써서 가능한 모든 수 가운데 무작위로 일부만 골라 그 중에서 최선의 수를 선택한다. 알파고는 여기에다 딥러닝과 강화학습이라는 알고리즘을 더했다. 딥러닝은 사람의신경망을 흉내 낸 인공신경망으로 기계학습을 하는 알고리즘이다. 알파고는 딥러닝을 통해 기존의 기보를 인지하고 학습해 마치 프로기사인 것처럼 다음 착점을 고른다. 이것을 정책 망이라고 한다. 이것을 가치 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알파고는 딥러닝을 통해 프로기사들이 둘 만한 다음 수중에서도 가장 승률이 높은 수를 고른다는 얘기다. 알파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책망과 가치망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자체 청백전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계속 피드백한다. 이것을 강화학습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알파고는 기존의 바둑 프로그램에 비해 인공신경망을 통한 상황 인식, 학습, 예측, 판단, 강화학습을 할 수 있는 지능형 프로그램이다. 적어도 바둑에 관한 한 알파고는 사람의 추론이나 수읽기, 판세 분석 등을 사람처럼 수행한다. 독립적인 인지- 학습- 예측- 판단이 가능하다면 그 사이클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도 있다. 알파고의 2국에서의 13수, 37수(인간 최고수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가 이런 사례가 아닐까.
둘째, 과거 인간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계가 등장하면 거의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그랬고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촉발된 전자혁명 그리고 20세기 말의 정보혁명도 마찬가지이다.
알파고의 등장은 새로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제한적이긴 하지만) 물건이 나타났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새로운 혁명이 조만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원래 기계가 그런 것이 아니냐고 그냥 심드렁하게 넘어갈 일이 이니다.
셋째, 자동차나 비행기, 또는 최신의 우주선이 등장한다고 해서 우리가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신체능력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들판에서 맹수하고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한겨울에 옷 한 벌 없이 돌아다니면 얼어 죽는다. 새끼를 넣으면 최소 몇 년은 부모가 보살펴 줘야 생명을 부지 할 수 있다. 인류가 그 모든 핸디캡을 딛고 이 행성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기계가 다른 신체조건을 극복한 것과 인간 지능을 극복(제한적이긴 하나)한 것은 다르다. 다른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비교우위가 새로운 인공물에 비하면 형편없는 것으로 전략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알파고는 인간의 자의식 같은 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바둑 같은 제한된 문제에만 최적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제한적인 요소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알파고의 등장은 충분히 흥분과 전율을 느낄 만한 일대 사건이다.
미지한 기지 시대의 개막
이번 대국에서 놀라웠던 점은 알파고가 인간 최고수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수를 연발했다는 점이다. 바둑계에서는 벌써 바둑의 정석을 다시 써야 한다.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알파고의 개발자들도 그 수를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사실 딥러닝의 경우 여러 층의 인공 신경 접속 망을 깔고 빅 데이터를 줬더니 아주 성공적이라는 결과만 알 뿐 왜 그렇게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는 실정이다. 굳이 말하자면 오직 알파고만 알 뿐이다. 물론 알파고가 인간 같은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런 표현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레토릭(Rhetoric)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자의식도 없는 기계가 초보적인 인공지능으로도 인간 최고수조차 생각할 수 없는 더 나은 수를 찾아냈다는 점은 놀랍다. 4국 후 어느 외신 기자가 질문했듯이 이런 인공지능이 의료 등의 분야에 투입돼 인간 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릴 경우 어떤 혼란이 생길지 가늠하기 힘들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럼스펠드는 알려진 미지와 알려지지 않은 미지를 말했던 적이 있다. 알파고 등장의 의미를 럼스펠드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모르지만 그 피조물은 알고 있는 (인간에게)알려지지 않은 (인공지능만 아는)사실(Unknown Knowns) 미지한 기지의 시대가 시작된 게 아닐까?
자의식 가진 강한 인공지능과의 상생
알파고의 등장은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 초지능에 대한 관심과 우려도 증폭시켰다. 스티븐 호킹이나 앨런 머스크 같은 유명인들은 예전부터 인공지능이 인류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의 파멸은 SF적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한다.
인간을 넘어선 초 지능의 등장 시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이점이 온다’ 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매우 긍정적이어서 앞으로 3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는 특이점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주변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훨씬 더 길게 잡고 있다. 아직 까지 인간의 지능이나 의식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을 넘어선 초자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들 말한다.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을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반면 알파고 처럼 자의식 없이 제한된 영역에서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비전ㅂ문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할 시점은 커즈와일의 예상보다 훗날이겠지만 100년 이상 걸릴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 시점을 점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현실이 된 인공지능과 어떻게 우리가 공존할 것인지 그 상생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4차 산업혁명을 촉발하며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알파고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리고 기자회견 때 나온 질문에도 있듯이 약한 인공지능의 등장만으로도 엄청난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 탑승자와 보행자 중 누구의 이익과 안전을 최선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여기 탑재할 인공지능에게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장 높게 가르쳐야 할까. 법정에서 병원에서 사고 현장에서 또는 전장에서 점점 더 똑똑한 인공지능이 나타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과 내용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는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강한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면.
1945년 인류를 파멸시킬지도 모를 가공할 신무기인 핵무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것을 만든 과학자들은 관련 기술을 모두 공개하고 국제적인 관리 체제를 만들자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냉전 체제 속에서의 무한 핵 경쟁은 인류를 여러 번 절멸 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유산으로 남겼다. 인공지능에서도 비슷한 되풀이 될지 모른다.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하기 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전 인류의 지혜와 합의를 모아야 하지 않을 까?
완제품 로봇 대신 레고 블록을
이세돌과 알파고의 첫 대결이 시작되는 그 시각에 마음을 같아서는 준비한 모든 수업을 취소하고 역사적인 대국 장면을 생중계로 보면서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엔 오늘이 인공지능의 역사에서 매우 뜻 깊은 날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세돌 9단의 패배와 이튿날의 연패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인공지능의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실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이다. 알파고 시대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과연 뭔가를 가르칠 자격이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에 며칠 동안 짓눌렸다.
한국형 천재의 종말을 말할 때 암기 잘하고 계산 잘하고 선행학습 잘하는 사람은 남들이 만든 규칙을 잘 따를 뿐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일취월장하고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잘 외우고 잘 계산하는 인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까지 우리는 기계가 손쉽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만 길러 왔던 셈이다. 업계에서는 대학에 대한 불만이 많다. 현장에서 곧바로 쓸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정부도 덩달아 산업계의 요구가 반영된 교육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학이 무슨 직업학교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은 제쳐 두고라도 알파고 시대에 현장에서 직접 쓸 수 있는 인재가 과연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지의 기지의 시대에 알려진 지식들로만 무장한 인재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언젠가 대학원 학생들에게 타임머신을 설계하라는 과제가 나왔다. 답이 없는 과제를 내면서 학생들의 생각의 구속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고를 마음껏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몇몇 학생들이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나와 있는 논의들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렇게 알려진 지식을 조합해서 그럴 듯한 답을 내는 작업은 이제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 시대가 와 버렸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산업계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뾰족한 답은 없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이제는 지식의 입력과 출력을 잘하는 인재가 아니라 데이터를 구축, 추출하고 분석해서 지식을 창출하는 인재, 지식 창출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할 줄 아는 인재, 말하자면 아키텍처 형 인재를 길러야 할 것 같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에게 근사한 완제품 로봇 완구보다는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레고 블록을 사줘야 한다는 얘기다. 산업계가 원하는 인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번 싫증나거나 부서지면 더 이상 쓸모없는 완제품 완구가 떠오른다.
이세돌- 알파고의 대국 이후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인공지능 관련 정책을 쏟아냈다. 매우 익숙한 풍경인 마큼 그 결과 또한 엽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업계 입장에서는 이번에 줄을 잘 서면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만 끝나 버린다면 이번 대국의 가장 중요한 유산 즉 인공지능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과 호응과 성찰은 머지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누군가는 긴 호흡으로 지금의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우리에게 또 인류 전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반추해 봐야 한다. 최소한의 대중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시대의 도도한 큰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 언제는 드론과 사물인터넷에 오늘은 이공지능에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무언가에 계속 끌려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적 가치의 디지털적 재발견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인간과 세상의 디지털로의 재구축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온 세상을 디지털로 다시 만드는 것이다. 알파고 를 만든 구글이 하려는 일이 정확하게 이것이다. 세상을 디지털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는 사물인터넷의 형태로 드러난다. 인간을 디지털로 재구축하려는 시도는 인공지능에서 지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디지털 재구축 수준은 세상의 극히 일부와 인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나 시물인터넷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큰 그림을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도시나 국가를 건설할 때 인프라 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듯이 디지털로 재구축될 세상에서도 결국엔 유무형의 기반시설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로마제국 천 년의 비결은 가도와 수도 망이었고 강력한 로마 군대조차 체계적인 병참이 핵심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제국의 입구에 들어서 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훨씬 더 많은 스마트폰을 파고도 수익률은 애플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 이유는 자기만의 디지털 인프라 디지털 생태계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선전 같은 인프라도 없다. 디지털 제국의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단지 스마트폰 하나 잘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이다. 한국형 알파고나 한국형 왓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인간과 세상의 극히 일부만이 이제야 디지털화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에게도 기회는 남아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 가치 자연환경과 생태를 디지털로 재구축하는 일에는 당연히 우리가 가장 유리하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이 작업은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며 진행될 수 있다.
SF영화 속의 초월적인 인공지능이 아니라면 당분간의 인공지능은 알파고 처럼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작업에 능숙한 형태일 것이다. 즉 로컬(지역적으로든 분야 적이든 )의 디지털화는 디지털 문명 건설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언젠가 인간을 넘어서는 초기능이 나오겠지만 그것은 지난한 로컬 디지털의 진화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바둑 인구 4만에 불과한 영국에서 알파고 라는 위대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나온 점은 그냥 넘겨볼 일이 아니다. 한류의 의미가 한국적 가치의 글로벌적 재발견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에겐 한국적 가치의 디지털적 재발견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금까지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아날로그적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생물학자나 진화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또는 소설가, 예술가가 각각 자신의 답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내놓았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를 디지털화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남긴 엄청난 양의 디지털 정보가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빅 데이터가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물인터넷을 구현해서 인간과 주변 세상 모두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고 생각해 보자. 당장 어디에 어떤 센서와 지능을 달아서 어떤 정보를 수집할지가 관건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자주 가는지 언제 어디서 어떤 정보를 더떻게 추출할 것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우리 한국인이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를 가장 잘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축적한 아날로그적 정보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디지털 세상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아날로그적 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유합된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우리자신에 대해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 왔던 전략, 남들이 하는 대로 잘 따라갔던 추격자 전략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구글이 하는 대로 쫓아간다면 과연 구글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로컬 혁신이 글로벌 혁신으로 이어진다.
구글이 인공지능에 쏟아 부은 돈이 30조 원이 넘는다. 우리 정부가 알파고 쇼크 뒤 발표한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돈은 겨우 수백억 원이다. 애초에 비교가 안 되는 게임이다. 게다가 구글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양의 빅데이터는 또 어쩔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구글을 따라잡겠다고 구글이 했던 방식이나 문제의식을 그대로 쫓아가서는 그다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기 힘들 것이다. 구글에겐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접근법이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설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디지털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는 식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 예를 들면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부익부 빈익빈, 청년 실업, 급속한 고령화, 저 출산, 자살,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우리가 가장 적극적인 디지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혁신이 나온다. 로컬 영역의 문제를 보편속의 특수로 파악할 수 있다면 로컬의 혁신은 곧 글로벌 혁신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의 세상을 우리 스스로가 디지털로 재구축하는 비전을 가진다면 인공지능이나 빅 데이터, 피 테크 등등을 별개의 독립적인 사안이 아니라 하나의 큰 그림속의 유기적인 요소로 파악할 수 있다. 정부가 그리고 기업이 할 일은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는 시야를 갖고서 그 속의 각 요소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생태계를 유지하고 인프라를 닦는 일이다. 몇 년 안에 뭔가를 달성하겠다는 올림픽 메달 따기 식 사고방식으로는 알파고의 충격파를 버티고 넘어서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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