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 비즈니스의 중심, 영국
뉴욕과 더불어 세계 금융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런던, 영국은 산업화를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로서 제조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일찌감치 금융업에 눈을 떠 전통적인 금융 강국으로 여전히 건재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시장 개방을 통해 금융 시장의 경쟁력을 키운 영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인재 양성 그리고 탄탄한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세계 금융 시장을 장악한 영국 금융계의 비결을 알아보고 영국의 사례가 우리에게는 어떤 교훈으로 장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식민지 개척과 산업혁명으로 축적한 막강한 부와 권력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하지만 대영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패권을 내 주며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종이 호랑이란 조롱까지 감내해야 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랬던 영국이 금융이란 새로운 무기를 앞세워 세계 경제의 중심 국가로서 옛 명성과 권위를 회복하고 있다.
영국 금융 산업의 상징, 시티오브런던
산업화의 발상지이자 맹주였던 영국, 하지만 제조업의 한계를 그 어떤 국가 보다 일찌감치 인식하고 금융업을 새로운 국부의 창출 채널로 받아들인 것 역시 영국이다. 돈에 관한 한 선구자적 감식안을 DNA로 물려받은 영국에서 이제 금융업은 영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아니콘이라고 해도 좋다.
영국의 금융업은 한때 영국 GDP의 30%에 육박하며 영국 경제의 가장 확고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취업을 앞둔 영국 청년들 대다수의 꿈은 당연히 금융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명성과 고액 연봉을 보장 받은 그들이 모여든 장소가 불과 1평방마일 밖에 안 되는 그래서 스퀘어 마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라는 시티오브런던이라는 사실이다.
영국 금융 산업의 핵인 시티오브런던의 협소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것은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 조밀한 통신망을 깔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티오브 런던 역시 좁디좁은 지역에 세계 유수의 금융사들이 입중해 있어 시간 낭비 없이 경쟁과 협력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금융 시장의 허브이자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온 고객이나 파트너 기업이 5분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니 원활한 소통과 높은 업무 효율성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덤인 셈이다.
런던이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지가 된 것은 이미 19세기부터였다. 런던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언제나 세계 교역의 주요 현장이었고 그 오랜 역사를 통해 탁월한 인력과 금융 인프라 라는 자산을 축적해왔다. 그런 풍족한 환경을 누리기 위해 입주한 세계 최고의 금융기업과 그 기업들이 고용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주민이 되었으니, 시티 오브런던은 세계적인 굴뚝 없는 공장지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의 기관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기투자 대상 1호가 런던의 부동산일 수밖에 없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더불어 세계 금융의 양대 축이 된 런던 동북단에 위치한 시티오브런던이 영국 금융계의 문화유산이라면 HSBC와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금융사들이 입주한 템스 강 하류에 우치한 카나리 워프는 세계 1위의 국제 금융 시장인 런던의 미래를 엿보게 하는 차세대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금융 동시 런던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경제에서 금융업의 기여
뛰어난 인재와 최적화된 인프라로 세계 금융 시장을 지매하고 있는 금융계가 영국의 아이콘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영국의 금융업은 영국 경제에 어떤 규모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영국 금융 산업 투자 서비스 기관인 런던의 IFSL(국제금융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영국의 국가 간 은행 거래 규모가 세계 금융 시장의 20%를 차지해 미국(9%)과 일본 및 프랑스(각 8%)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한 시장은 하루 평균 거래량이 7530억 달러로 세계 외한 시장의 31.3%가 넘어 지구상에서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보험 부문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원보험료의 GDP대비 규모로 따지면 이 또한 세계 1위의 규모이다. 이밖에도 외국 주식 거래와 파생상품 거래가 43%를 점유하고 있어 영국 금융업의 위세를 살감케 한다.
따라서 금융업이 영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고용 확대와 서비스 산업의 발전 촉진으로 국가 경제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업의 기여도는 수치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GNP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지난 2008년 5.3%를 넘어섰고 금융 부문과 직접 연관된 회계나 법률 서비스, 투자자문 등 관련 산업을 포함할 경우엔 9.2%를 상회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금융 산업 종사자가 6년 전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금융업의 고용창출 효과란 측면에서도 금융업이 영국 경제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금융업이 영국 경제를 좌우하게 된 것은 18세기 초 런던이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면서부터다.
금융 시장의 모태가 된 런던은 금융과 보험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실물거래에 따르는 자금 수요 창출과 국제 교역과정에서 발생하는 선박과 해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 상품이 개발된 것이다. 상인들은 물품 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할인해 상품 구매에 필요한 단기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수요가 런던 금융 시장의 근원이 되었다.
이러한 시장 환경과 함께 중상주의라는 시대정신도 영국식 금융 발전에 한몫 했다. 근대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융성한 영국의 중상주의는 중금주의란 방식으로 전개되었는데 부의 척도인 금과 은의 확보를 위해 제해권을 앞세워 금과 은을 결제 방식으로 강요하고 무역수지를 늘리기 위한 투자를 하면서 근대적 금융 제도를 발전시켜 나갔다.
수세기에 걸친 교역으로 형성된 개방적 문화와 집중화에 성공한 금융 환경 그리고 정부의 규제 개선 노력은 런던 시장의 확고한 지위를 완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중상주의로 발아된 영국식 금융업은 이제 영국 경제의 뿌리가 되었고 런던은 세계 시장의 허브이자 허파로서 기능하고 있다.
영국에서 통계학이 어떻게 금융 발달에 기여했나?
사회현상 등을 수량 통계적으로 관찰 분석 처리하는 통계학은 크게 독일의 사회 통계학과 영국의 수리통계학이라는 두 줄기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영국의 수리통계학은 품질관리 등의 실무와 여론 조사 및 시장조사를 포함하는 통계 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기초이론을 제공해 준다.
영국이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수리 통계학 전공자들은 금융계로 이입돼 파생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논리적 근거리자 주역이 되었다.
런던 금융 시장의 성공의 요인
영국의 런던은 미국 뉴욕과 함께 세계 2대 국제 금융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금융 허브이다. 과거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이 낮아졌지만 금융 분야에서 만큼은 강국으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 정책, 인프라, 인력 등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런던 금융 시장의 경쟁력을 살펴보자.
시장 친화적 금융 감독 규제
런던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등극하기 위해 극심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산업혁명 이후 오랜 기간 국제 무역의 중심으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량했지만 파운드는 세계 기축통화란 영예로운 자리를 달러에 내 주었고 영국 경제는 급부상한 미국 경제의 도전에 힘을 잃고 말았다.
성장 동력을 상실한 영국 경제는 거듭되는 급전직하의 위기 속에서 방황했다. 급기야 1976년 오일 쇼크로 전반적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외환위기에 봉착,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울 받아드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영국 개혁의 전도사인 철의 여인 대처 전 수상은 1979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면적 외화자유화 조치를 강행했다. 이어 1986년에는 이른바 금융 빅뱅이라 불리는 증권 시장의 기등을 활성화하고 증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오늘의 금융 런던이라는 신화를 창조한 건 붕괴 직전의 국가 경제에 긴급 처방을 내려 개혁을 단행한 대처 정부의 과단성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사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금융업을 세계 금융계의 허브로 탈바굼한 영국 정부의 개혁 조치는 원칙 중심의 신축적 규제와 리스크 중심의 금융 감독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환골탈퇴 이전 영국 금융 시장의 현 주소는 런던의 날씨만큼이나 암울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 금융 시장 간의 경쟁 심화로 일본 도쿄에도 밀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고 높은 거래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영국 주식이 미국 시장에서 예탁증권 형태로 거래되면서 주식 시장의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날 지경이었다.
대내적으로는 전통적인 금융기관 업무 영역의 규제 및 증권거래법이 급증하는 증권 거래 규모와 다양해지는 금융 수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불만 여론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법률과 시스템의 변화라는 시장의 니즈를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통적 거래 관행에 발목이 잡혀 낙후된 환경 속에서 질식해 가던 영국 금융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였다. 1976년 말의 파운드화 외환위기와 1970년대 후반 발생한 증권거래업자 사기사건 등을 겪는 과정에서 구조적 취약점이 노출된 영국 금융 시장은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1986년 제정된 금융 서비스 법은 금융 빅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증권 통합법은
첫째 증권거래소의 회원권 취득 환화로 런던 증시의 개방을 의미했다. 이 조치로 외국 증권사의 러시가 이뤄진 것이다.
둘째, 증권 거래 수수료의 자유화로 증권 시장의 거래 비용 인하 경쟁이 촉발되었고
셋째, 은행 증권 보험의 상화업무 진입이 허용되면서 다양한 업종의 금융 자회사를 거느린 금융 그룹의 형성이 가능해졌다.
금융 빅뱅이 파급효과는 컸다. 세계 굴지의 금융사들이 런던을 국제 투자 업무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선진 금융 기법이 빠르게 시장에 도입되었고 경쟁력을 키운 영국의 금융 그룹들은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물론 영국계 증권사의 90%가 외국 금융사에 인수되는 아픔도 있었지만 빅뱅 정책에 적극적으로 적응한 영국 증권사들은 세계적 증권사로 사세를 키워 갔다. 또 대형화와 겸업화에 성공한 영국 은행들은 다양한 업종의 자회사를 거느린 금융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영국의 금융 개혁은 비단 1980년대의 금융 빅뱅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 단일 통합 금융법이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의 제정으로 이어진 개혁은 더욱 쾌적한 환경의 시장의 구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기존 10개의 자율 규제기관을 통합해 만들어진 영국 금융 감독청은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관료주의적 규제 일변도의 전책이 안진 친절한 교통경찰처럼 시장의 흐름에 기여하는 행정과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원칙에 입각한 신축적 규제와 리스크 중심의 금융 감독은 금융 시장의 유동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토대가 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영국 금융업의 장점이자 경쟁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양질의 금융전문 인력
금융업은 사람, 즉 인재가 자산의 시작이자 끝이다. 넓은 부지의 공장도 생산라인의 기계 설비도 필요 없다. 오로지 금융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할 뿐이다.
일반 소비자에게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금융이야 수익률이 우선이지만 거대 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투자하는 사모펀드, 헤지펀드, M&A 등 고수익 금융 사업의 관건은 넓은 인맥과 고급 정보를 확보한 인재이다. 따라서 금융계는 어느 분야보다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런던은 축복 받은 땅이다. 세계 금융 인재의 블랙홀이라고 불릴 만큼 인재들이 선호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금융계의 세계적 인재들은 런던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일까?
세계 10위권의 시카고 비즈니스 스쿨이 지난 2005년 유럽 캠퍼스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영국 런던으로 이전하며 이전을 결정한 것은 세계 금융의 흐름을 습득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런던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만 봐도 답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세계 최초로 탄소 거래 시장을 선보인 곳이 바로 런던이었다. 금융 런던의 탁월한 인재들이 한 건을 올린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유럽의 뭉칫돈은 물론이고 중동과 아시아의 큰손들이 앞 다퉈 런던을 주목하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처럼 런던은 미국보다 먼저 국제 금융의 첨단 기법을 선보이는 현장이 되고 있고 그런 선진 기법을 배우기 위해 차세대 인재들은 너나없이 런던을 선호하는 선순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약 900만 명의 런던 시민 중 금융사와 금융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무려 150만 명에 가깝다. 글로벌 도시 하나가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된 150만 경제 대군을 앞세워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런던 인구 중 2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무려 30만 명이 넘고 이들 중 10만 명 가까운 인력이 카나리 워프의 금융회사에 근무한다는 사실은 런던이 왜 21세기 세계 금융의 허파인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다. 그렇다면 이런 특출한 인재들은 어디에서 배출되는 것일까?
세계 100대 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린 10여 개 명문대학을 중심으로 영국의 금융 맨이 배출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다국적군이라고 해도 좋다. 영국에서 회계, 보험, 증권 등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은 유럽과 미국 출신을 중심으로 자그마치 4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국적이나 민족과 무관하게 영국이라는 공간 속에서 금융인으로 성장하고 졸업 후엔 그런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거대한 인맥을 형성해 세계 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주인공이 되고 있다.
시티오브런던과 카나리 워프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있는 금융 인재들의 천국, 런던,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런던에서는 비단 이런 특정 그룹만이 길러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체화된 경제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 인재 양성에 있어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영국과 같은 금융 선진국에서는 금융 산업을 과학기술의 한 분야로 인식하고 있다. 금융 공학FE(FINANCIAL ENGINEERING) 또는 금융 기술(FT: Financial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금융 전문 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의 금융 상품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수학, 통계학, 물리학적 지식이 총동원된다. 독일 한 은행의 리스크 부서에는 수백 명의 수학자와 물리학 박사가 근무하고 있고 미국 월 스트리트의 금융 인력도 수학과 와 물리학과 출신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풀뿌리 금융 교육으로 금융 역량 강화
영국이 금융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민들이 금융 지식을 체화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금융 교육이란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데 이를 주관하는 컨트롤타워가 바로 금융 감독기관인 FSA(Financial Service Authority) 이다.
FSA(Financial Service Authority)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1998년 소비자 교육에 대한 첫 번째 전략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소비자 교육을 추진했으며 2003년 말부터는 단순한 소비자 교육을 넘어 전 국민의 금융 역량 강화로 범위를 확대했다.
금융 역량이란 금융 교육뿐 아니라 금융 소비자가 금융 제도를 이용할 때 필요한 제반 사항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FSA(Financial Service Authority)는 설문조사 분석 등을 통한 결과를 전략 수립에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금융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전 국민의 금융 지식 체화를 위해 금융 고육과 금융 결정을 나누어 운영한다. 우선 영국의 금융 교육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민간기관이 주체가 돼 정부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이뤄왔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금융 교육은 4세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뤄지는데 이러한 교육을 주관하는 곳이 피펙(PFEG: Personal Financial Education Group)이다. 1996년 출범한 비 영리단체인 피펙은 정부와 금융협회, 소비자단체, 금융회사, 교육 관계자 등 총 43개 기관의 긴밀한 협력관계로 운영되며 6개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직원은 자원봉사자로 구성돼있으며 운영 경비는 정부와 대형 금융사, 소비자단체로부터 지원받는다.
피펙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수준의 금융 교육 교제를 만들어 배포한다. 현재 영국 전역에 있는 중, 고등학교의 50% 이상이 피펙으로 부터 교재를 제공 받고 있다.
피펙에서 제공하는 교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체계적인 금융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다양한 수업 방식을 활용한다. 단순한 이론 암기가 아니라 실제 참여와 토론을 통해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파티 예산을 세운다든지 물건의 가치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식이다. 이러한 참여 유도 형 수업은 수학적 지식을 비롯해 언어와 문학 영역의 지식까지 습득할 수 있게 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 준다.
피펙뿐 아니라 은행 차원에서 운영하는 금융 교육 또한 시스템이 탄탄하다. 일례로 중, 고등하고 내 교내 은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HSBC는 자사 직원이 직접 출강해 금융 현장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들려준다. 이처럼 영국의 금융 교육은 일회성 프로젝트나 캠페인이 아니라 학교 정규 교과 관정에 속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금융 교육이 청소년들이 스스로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궁극적 목절이 있으면 금융 결정은 성인들에게 Focus를 맞춘 전략이다.
성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마스(MAS: Money Advice Service)를 통해 조언을 해 주는 데 목표를 둔다.
FSA 산하에 있다가 2011년 독립한 마스는 결혼, 출산, 자녀 교육, 노후 준비 등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맞춤형 조언을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젊은 층에게는 담보 대출을 받는 법을 알려주고 노년층에게는 노후 연금 상품에 대해 알려주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금융과 관련해 잘못된 결정을 내릴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간행물과 인터넷, 전화 상담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정보를 조언 받을 수 있다. 마스 역시 피펙 처럼 정부와 민간 금융사의 지원을 동시에 받는다.
영국의 금융 교육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동안 이뤄지며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재정 문제를 동반자적 시각에서 실질적으로 접근한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금융 교육 덕분에 영국 국민은 여타 나라의 국민보다 높은 금융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또한 영국이 금융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금융 산업에 최적화된 최고의 인프라
글로벌 외한 트레이더들에게 런던의 오후 네 시는 환거래의 표준시로 통한다. 하루를 마감하는 오후 네 시가 되면 다시 한 번 활기를 띠며 금융 강국의 위세를 뽐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런던 외환 시장의 거래 시간대를 위핵해 도쿄의 표준시를 두 시간 앞당김으로써 런던과 개, 폐장 시점이 겹치지 않도록 하자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영국은 미국과 아시아 지역의 중간 시간대라 글로벌 금융 거래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이것이 바로 런던의 표준시로 통할 수 있는 이유이다.
또한 카나리워프를 비롯해 런던에는 내로라하는 각국의 은행과 회계 및 법률법인, 신용평가사, IT 기업, 스타트업, 컨설팅업체 등이 오밀조밀 모여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 기업이나 파트너 기업이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당연히 업무 효율성과 편의성이 높다.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는 금융 인프라는 규모의 경제와 비용 절감을 가능케 한다. 이는 런던이 가진 비할 데 없는 힘이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영국은 더할 나위 없는 금융 인프라를 제공한다. 일찍부터 교역으로 형성된 개방적인 문화는 외국인에게 관대한 국민 정서를 형성했고 런던은 외국인이 편견과 차별 없이 공평부사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런던시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런던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무려 300개에 달한다. 그만큼 외국인이 많다는 방증인데 런던에서 각양각색의 인종과 마주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이 또한 금융 강국 영국이 만들어 낸 새로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영국민의 개방적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런던의 케이블 방송에서 지역별로 운영하는 이슬람 방송 채널이다. 이처럼 뉴욕이나 도쿄 등 여타 국제 금융 도시에 비해 이슬람권에 훨씬 관대하기 때문에 영국이 중동의 오일 머니를 흡수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이 애당초 금융 산업에 눈을 돌린 건 상대적으로 작은 내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어느 누구도 그것이 최적의 선책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가지지 않는 금융 강국으로 다시금 위력을 떨칠 수 있었던 요인은 어느 한 가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국제 공용어인 영어의 종주국이라는 점, 미국과 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지정학적 장점, 편리한 통신망과 교통, 국민들의 국제적 감각과 개방적 정서, 시장 친화적인 금융 감독 규제 등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오늘날의 영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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