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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포러쉐 911

루지에나 2010. 10. 10. 21:30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자석 진자`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바닥에 자석이 있고 그 위에 줄에 달린 쇠구슬이 떠 있는 일종의 장식품이다. 구슬을 툭 치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다가 이내 꼿꼿하게 서버린다. 포르쉐 911 카레라 2S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문득 자석 진자가 떠올랐다.

자동차에서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균형은 엔진 배치와 굴림방식으로 조절되는데, 운동성능·안정성·경제성 등을 고려해 배치하게 된다. 그 중에서 RR(Rear engine Rear wheel drive)은 엔진이 차 뒤에 있고 뒷바퀴를 굴리는 구동 방식이다. 무게가 온통 뒤로 쏠려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않을 것이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앞이 가벼운 탓에 고속 직진 주행에 불리하고, 뒤가 무겁기 때문에 고속 코너링에서 뒤가 확 돌아버릴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한번 균형을 잃으면 제자리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RR의 대표는 포르쉐 911이다. 과거 911은 운전하기 어렵고 위험한 차로 악명 높았다. 한 번 뒤가 돌아 버리면 대부분은 컨트롤 불가. 운전자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911을 제대로 몰 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차를 제대로 알고 테크닉에 능숙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뒷바퀴굴림이 정통 911로 숭배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오래 전 얘기다. 그 같은 구조적 단점을 기술력으로 꾸준히 극복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911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스포츠카로 거듭났다. -물론 한계를 벗어나면 과거의 악몽 같은 특성이 되살아 날 수 있다.

1989년에 나온 964부터 네바퀴굴림이 도입되었다. 911의 고질적인 단점을 덮어 버릴 수 있는 특효약이 나온 것이다. 안정성에 있어서는 뒷바퀴굴림보다 한 수 위지만 마니아들의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정성을 담보로 늘어난 무게와 구동저항이 스포티한 감각을 갉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911은 골수 마니아들만을 위한 차는 아니다. 보다 안전하게 포르쉐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네바퀴굴림은 그들의 갈망하는 영혼을 달래주었다. 게다가 포르쉐는 996부터 누구나 탈 수 있는 편안한 스포츠카로 성격을 바꾸었다.

이는 997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정통성을 살리기에는 너무나 안정적인 차로 바뀌었다. 뒷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의 차이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두 굴림방식의 차이를 확연하게 체험할 정도의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적어도 마음 놓고 차를 날릴 수 있을 공간이 있어야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결국 두 차의 차이는 정말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 아니면 무의미해질 정도에 이르렀다. 지금 시대에 뒷바퀴굴림방식 911만이 정통이라고 외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차분한 은색 포르쉐 카레라 S의 문을 여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새빨간 내부 인테리어가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새빨간 입을 가진 해저 괴생물체에 빨려 들어가듯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빨간 물이 뚝뚝 배어 나올 것 같은 게 기분이 묘하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지만 911의 외형상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다.

좀 더 커진 공기 흡입구, 터보에 달려 있는 것과 비슷한 LED 주간 주행등, 각을 살리고 LED를 박아 넣은 리어램프가 주된 변화. 실내도 마찬가지여서 크기가 커진 모니터와 버튼을 줄여 조작 성능을 높인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만이 눈에 띌 뿐이다.

외형적인 변화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성급하게 액셀 페달을 밟았다. 그르렁 하는 거친 음색이 등짝을 마구 후려친다. 2천~3천rpm에서 급격하게 저음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심장이 급격히 쿵쾅거린다. 3.8리터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출력이 385마력으로 30마력이나 껑충 뛰었고 최대토크도 42.8kg·m로 커졌다.

연비도 리터당 9.8킬로미터나 되고 배기가스도 유로5와 미국 LEVII를 가뿐하게 만족시킨다. 0→시속 100km 가속은 4.5초. 조금만 페달을 세게 밟으면 현기증에 시달려야 한다. 더블클러치 7단 트랜스미션인 PDK는 놀라울 만큼 신속한 변속으로 막강한 출력을 남김없이 타이어로 전달한다. 변속 때 엔진 회전수 변화로 인해 `웅~`하는 소리는 들리지만 정작 기어가 물리고 지체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코너에서 조금 속도를 높여 들어가니 뒤가 아주 살짝 흐른다. 약간 밀려나는 듯 싶더니 이내 제자리를 찾는다. 앞서 얘기한 자석 진자 같은 느낌이다. 딱 여기까지가 좋다. 사실 미끄러질 때보다 미끄러지기 직전이 더 긴장된다. 앞이 가볍기 때문에 들뜬 느낌이 들고 여차하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기분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고속주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뒷바퀴에 무지막지한 접지력이 작용하지만 가벼운 머리 때문에 스티어링 휠을 쥔 손에서 힘을 뺄 수가 없다.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뒷바퀴굴림 911이 정통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답을 찾았다. 바로 `긴장감`이다.

뒷바퀴굴림만을 정통으로 여기는 것은 일종의 고집이다. 정통성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고자 하는 오기 섞인 고집이다. 하지만 뒷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여지가 없다 하더라도, 어쨌든 시시각각 긴장감을 더해주는 쪽은 뒷바퀴굴림이다. 바로 그 긴장감이 이 시대에도 뒷바퀴굴림 911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출처 : 포러쉐 911
글쓴이 : 무한질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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