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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85년]세계적 시멘트 기업 일군 장본인인 김채겸 쌍용양회공업(주) 사장님의 경영철학 이야기

루지에나 2013. 4. 3. 13:29

 

 경영철학
·신뢰, 혁신, 인화 강조
·사원 ‘1인 1테마 운동’ 전개
·고객, 주주, 종업원 모두 만족시켜야

 

국내 최대 시멘트회사인 쌍용양회공업 40년 역사의 중심에는 전문경영인 김채겸 사장이 있다. 그는 1969년 쌍용양회 영업부장으로 인연을 맺어 1991년 쌍용그룹 총괄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쌍용양회를 국내 굴지의 시멘트회사로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신뢰, 혁신, 인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에서 신뢰를 혁신과 인화를 이뤄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신뢰는 고객, 종업원,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어 기업의 제품, 서비스, 기술, 경영 등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이용하는 데 있다”고 항상 강조했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담고 변화를 예측하며 기회를 선점하여 항상 도전적 자세로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것으로 인화의 바탕 위에서 신뢰를 이루는 구체적인 수단이다. 인화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팀워크를 중시, 조직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경영철학으로 신뢰와 혁신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 김채겸 사장의 경영철학은 ‘도전, 고객 존중, 한마음, 인재 양성’의 ‘쌍용정신’으로 이어져 21세기 쌍용의 도약을 일구는 기본 정신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영철학을 기반으로 김채겸 사장은 인재 육성에도 주력하였다. 그는 취임과 함께 ‘1인 1테마 운동’을 실시해 사원들이 잠재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사원들의 애사심을 높여 조직력을 극대화하였다. ‘인화’에 기초한 쌍용양회공업의 이러한 경력관리제도는 인사고과, 교육, 상벌, 부서 이동 경력, 직접 근무연수를 인사정보화해 종합적으로 연계하는 인재 육성형 토털 인사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한 부서 내의 장기 체류가 본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도 좋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면서 우수한 인력일수록 먼저 이동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김채겸 사장은 1961년 경제기획원 재경사무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64년 재경서기관 겸 부이사관, 상공부 중공업과장 등 경제전문 관료로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대학원 강사 및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교수 등 경제학자로서의 연구 경험도 풍부하다.
쌍용양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영업부장으로 입사한 1969년이었다. 이후 이사, 상무, 전무 등을 거쳐 1981년 쌍용양회공업 사장을 맡았으며, 1991년 쌍용그룹 총괄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쌍용양회공업을 국내 굴지의 시멘트 제조회사로 성장시켰다. 1981년 1억 달러 수출 달성, 1988년 동해공장 시멘트 출하 1억 톤 돌파, 1994년 지분 100% 확보와 매출액 1조 원 달성 등은 김채겸 사장 재직 당시 쌍용양회공업이 이룩한 성과들이다. 이러한 성과는 김채겸 사장이 경제관료로서, 경제학자로서 쌓은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국내 시멘트산업은 1919년 일제에 의해 평양 근방에 세워진 시멘트공장을 그 출발점으로 하며, 대한민국의 근대화 및 산업화와 함께 성장해왔다. 1942년 강원도 삼척에 세워진 삼척시멘트 공장이 있었으나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후 1953년 유엔 운크라(UNKRA)의 지원으로 재가동, 1956년에 동양시멘트(주)로 개칭되었다. 1957년 대한양회 문경공장(현 쌍용양회 문경공장)이 준공되면서 국내 시멘트 산업은 본격적인 발전 궤도에 진입하게 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 15개년계획에 의해 쌍용양회 등이 설립되면서 국내 시멘트 산업은 도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1970년대의 건설경기 활황 및 수출증대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1980년대 초반 유가상승으로 성장이 둔화되었고 1986년 이후 올림픽 개최, 수도권 신도시 건설, 사회간접시설 확충 등 수요 집중으로 극심한 공급부족 현상을 겪었으나, 1992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강력한 건설경기 억제책으로 1997년까지 5%대의 안정된 수요 증가세를 유지해왔다. 1997년 말 IMF 체제 이후 건설경기 부진으로 시멘트산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사회간접시설 투자 및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의지 등으로 건설경기가 회복되고 업계의 자구 노력으로 경영실적이 호전되면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쌍용양회공업은 단일 사업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동해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김채겸 사장은 동해공장 560만 톤 증설 사업의 성공적인 완수로 시멘트라는 특정 업종의 단순한 양적 팽창을 넘어 쌍용양회공업그룹 전체가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시멘트 수출에 쌍용, 수출과 국내 공급 물량수송에 쌍용해운, 시멘트 포장지 조달에 쌍용제지, 에너지·연료는 쌍용정유, 거대장치산업의 기계설비를 뒷받침하는 쌍용중공업 등 그룹 전체가 성장, 발전하는 일대 도약의 계기를 이루었다.
동해공장 1단계 증설공사가 완료한 후에는 토목, 건축 분야의 축적된 기술과 양질의 인력을 바탕으로 쌍용건설이 탄생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동해공장 560만 톤 증설 사업의 성공적 완수는 대외적으로 국제수지 개선, 산업 기반 확충, 유통구조 개선, 기계공업 육성, 고용 증대 등 비단 쌍용양회공업 자체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와 나아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1인 1테마 운동’을 도입해 1982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인 1테마 운동은 사원들로 하여금 데이터 관리의 생활화를 통해 통계적 감각을 갖게 함으로써 개인의 자질 향상은 물론 전반적인 기술 수준 향상을 꾀하였다. 또 각종 설비의 최적 운전 조건 설정 및 공정관리 방안 등을 고안함으로써 품질향상 및 원가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큰 몫을 하였다. 1990년까지 시행된 이 제도는 총 3,000여 건의 테마 해결 실적을 거두었다. 이 운동으로 주위 작업환경 개선, 제품의 품질수준 향상, 업무처리 절차 개선, 생산공정 개선, 원가절감 및 생산성 향상 등으로 경영합리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신뢰, 혁신, 인화’라는 경영철학 아래 인재를 중시한 김채겸 사장은 사람을 키우고 인화를 도모하여 고객, 주주, 종업원을 만족시킨다는 의지로 기업을 이끌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81년 철탑산업훈장, 품질관리대상,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85년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하였다. 부산대학교, 중앙대학교 등 상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한국은 도전한다’ ‘조직경영의 이론과 실제’ ‘달리며 생각한다’ ‘절에서 면으로’ ‘결국은 경제가 말한다’ 등의 집필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쌍용양회는 1962년 설립된 국내 최대의 시멘트 제조회사로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인 동해공장을 비롯하여 영월공장과 문경공장에서 연간 국내 생산의 25%인 1,500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다. 전국 28개 출하기지를 통해 고품질의 시멘트를 공급, 내수뿐만 아니라 시멘트 수출에도 적극 나서 매년 국내 시멘트 수출량의 50%를 담당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시멘트 생산과 더불어 레미콘 제조 및 판매업, 폐수처리 시스템 등 환경 관련 사업, 석유판매업, 부동산 개발사업이다. 설립 이래 지속적인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쌍용양회는 1994년 국내 시멘트업계 최초로 제조 부문에서 ISO9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또한 2001년 11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설비관리협회(JIPM)로부터 설비관리 시스템(TPM : Total Productive Maintenance)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시멘트 전문기업으로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레저 부문인 용평리조트와 신소재 분야인 페라이트 마그네트와 세라믹 사업부를 분사하였다. 특히 2000년 일본 태평양시멘트로부터 350억 엔의 외자유치와 함께 2001년 10월에는 1조 7,000억 원의 출자전환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극복, 태평양시멘트와 공동경영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출처 : KMA 한국능률협회 블로그
글쓴이 : KM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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