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철학
·현장 중심 경영 강조
·대범하면서 꼼꼼한 경영스타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 유지
현대그룹이 막 뻗어나가기 시작하던 1970년대 가장 드라마틱한 스토리 중 하나는 현대중공업의 창업과 관련된 것이다. 현대는 1972년 조용하던 어촌마을을 최대의 조선회사로 탈바꿈시켰고, 우리나라를 세계 1위의 조선대국으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이러한 현대중공업의 화려한 신화 뒤에는 현대의 숨은 일꾼 이춘림 현대중공업 사장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다. 주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 야전사령관이라고 불렸던 그는 1957년 현대 입사 후에 인천도크 복구공사 등 수많은 공사현장을 거쳤다.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 사장 재직 시절에는 계열 기업의 인재를 양성하고 방대한 제도와 조직을 정비하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서울대학교 공대 건축학과를 나와 건설과 중공업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현대건설 공채 1기 출신이다. 1957년 삼성그룹의 신입사원 공채시험제도 도입이 계기가 돼 경제 성장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한 전문경영인들 중 대표적으로 성공신화를 이룬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겐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이는 스스로 나서기를 꺼리는 이춘림 사장의 겸손함 때문이다.
비록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춘림 사장의 역할은 현대의 심장부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다. 지금의 ‘현대’가 있기까지 현대중공업은 물론 현대종합상사를 수출 1위로 올려놓은 그의 공로가 크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조선 분야는 물론 해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 분야에서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종합중공업 회사로 세계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에는 바로 ‘하면 된다’라는 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딛고 세계 최고의 조선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현대의 ‘개척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그 현대 정신의 중심에 바로 이춘림 사장이 있었다.
그는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얻어진 우수한 기술력과 추진력, 그리고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경영자 스타일을 보였다. 새벽 6시에 현장에 나가 일을 챙기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임직원들은 긴장하기 일쑤였다. 이춘림 사장의 별명이 ‘벵골호랑이’로 붙여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의 현장 경험을 통한 추진력은 세계 조선산업 내에서 현대중공업이 초유의 기록들을 세우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조선사업을 통한 축적된 기술로 해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사업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종합중공업 회사로 성장,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해온 현대중공업은 1972년 3월에 황무지인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 건설을 위한 첫 발을 내디딘 이래 2년 3개월이라는 최단 기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완공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또한 그리스 리바노스사의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VLCC)을 성공적으로 건조해 세계 조선 사상 최초로 조선소 기공과 함께 선박 건조를 완료하기도 하였다. 현대 신화를 창조한 현대중공업은 세계 조선산업의 산증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1974년에 현대중공업의 1호선 명명식 이후 10년 만인 1984년에는 총 231척, 1,000만 톤을 인도하는 기록을 세웠고, 1988년에는 2,000만 톤, 1997년 5,000만 톤, 2000년 7,000만 톤의 선박을 인도하여 세계 조선산업 사상 최단 기간에 최대의 건조 실적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선박 건조 능력에서도 최고의 설계 인력과 현장 인력, 그리고 최적화된 설비시스템을 바탕으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1929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해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이춘림 사장이 현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7년이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다니던 당시 선친과 故 정주영 회장과의 친분이 인연이 되어 부대 막사, 교회 건축을 도와주면서부터다. 1년 동안 정주영 회장을 가까이에서 도왔던 그는 복학을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나 현대와의 끈은 간단히 끊어지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다시 현대로 들어가게 되면서 현대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게 되었다.
이춘림 사장이 잔뼈가 굵은 곳은 현대건설이다. 1960년대 국내 건설업은 아직 해외진출을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을 비롯한 건설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중동 진출을 추진하면서 우리 건설업은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 그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적 노하우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왔으며, 결국 이것이 현대의 해외 진출의 큰 자산이자 발전의 기초가 되는 데 한 몫을 했다.
이후 이춘림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을 거쳐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종합상사 사장, 현대종합상사 회장 등 현대 계열사 중에서도 굵직한 업체들을 거치면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형성하여 야전사령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매사에 꼼꼼하고 철저한 스타일이며, 현장 위주의 추진력에다 계수에 매우 밝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맡은 직책에 비해 그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데는 그의 겸손함이 한몫을 했다. 현대중공업을 세계 최대의 조선회사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그임에도 모든 공적은 주위로 돌렸다.
현대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정주영 회장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오늘날 현대를 만들고 거기에 정인영 회장 등 현대가가 큰 뒷받침이 되었다”라며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최고경영자가 강한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기업의 허리띠가 그만큼 튼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 기업이 튼튼하지 못한 허리띠로 형성되어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결단력의 경영인이라 하더라도 결코 자신 있는 도전을 하기는 어렵다. 현대 최고의 경영자 정주영 회장의 결단력 뒤에는 이러한 튼튼한 허리띠인 이춘림 사장과 그 참모들이 늘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현대건설의 태동기부터 현장을 지켜온 산증인이었음에도 대중적 스타가 되기를 사양하고 여전히 현대의 숨은 일꾼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진정한 경영인이 바로 이춘림 사장이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울산의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조선(造船)사업을 시작해 짧은 기간 안에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으로 이끈 기업이다. 조선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인 1983년 총 선박 건조량(建造量) 세계 1위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25년간 부동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과 고용 창출, 사회공헌 등을 통해 어려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분야 외에도 해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건설장비 등 6개 사업본부를 운영하며 종합중공업그룹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뛰어난 경영성과를 거뒀다. 전체 사업에서 절반의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사업본부는 사상 최대의 수주 실적을 올려 명실공히 세계 최고 조선업체의 위상을 떨쳤고, 조선강국의 자존심을 이어 나갔다. 2006년 미국과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지들이 일제히 ‘세계 우수선박’ 건조회사로 선정하여 24년 연속 세계 우수선박 건조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1만 1천 400TEU급 컨테이너선과 같은 대형 선박들을 수주하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박 대형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는 선박 육상건조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2006년 6월, 육상건조 공법 도입 2년 만에 10만 5,000톤급 원유운반선 10척을 건조하며 100만 톤(DWT)을 돌파했고, 11월부터는 세계 최초로 초대형 LPG선의 육상건조에도 착수했다. 플랜트사업본부는 세계 최초로 해저 터미널용 LNG 저장탱크를 제작해 관심을 모았고, 2007년 2월 우주개발사업 진출을 선언해 관심을 모았다. 엔진기계사업본부는 전세계 선박용 엔진시장의 35%를 점유하며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산업용 로봇 수출 사상 최대 규모였던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로봇시스템 공사를 완료했다.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는 신재생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현재 충북 음성에 솔라셀 공장을 설립 중이고, 건설장비사업본부는 각종 해외전시회에 참가해 현지에서 수주 성과를 거두는 등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시장을 확대했으며, 특히 유럽 지역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며 내년도 전망을 밝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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