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재가동의 의미
섬나라 일본의 여름은 무덥다. 고령자들은 함부로 야외 활동하기도 겁날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 작열한다. 그런데 올 여름 일본 열도는 살인적인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만 명이 참여한 도심 시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원전 재가동 반대 시위다. 웬만하면 정부 전책에 수긍하는 일본에서 이 같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꽤나 드문 일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자위대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기 위한 안전보장법제 국회통과를 강행하려는 아베 정권에 시민들이 반기를 든 전쟁 반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시위가 가세했다. 다름아닌 원전 재가동 반대 시위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고수해왔던 원전 제로 정책 폐기에 항의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재가동 원전 부근에서는 당시 민주당의 원전 제로 정책을 주도했던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자민당 출신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까지 나서 원전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안전보장법제 국회 통과 반대 시위에 이은 원전 재가동 반대 시위는 아베 정권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제 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최저 수준인 30%대까지 떨어진 지지율이 추가로 하락한다면 장기 집권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아베 정권은 왜 국민 반대에도 원전 재가동을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일까?
23개월 만에 원전 제로 해제한 아베
일본에서 원전이 완전 중단된 것은 2013년 9월 16일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당시 민주당 정권은 원전 제로를 선언하고 전국의 원전을 순차적으로 가동 중지했다.
가장 마지막에 가동이 중단된 것이 2013년 9월의 후쿠이원전 4호기다. 이때부터 일본은 원전 없이 석탄과 석유 발전으로 모든 전기 공급을 대체해왔다.
그러나 7월 11일 가고시마현 사쓰마센다이시에 있는 센다이원전이 재가동을 시작하면서 일본의 원전 제로 상태는 불과 23개월 만에 해제됐다. 이번에 재가동에 들어간 센다이원전은 후쿠시마원전 사고 직후인 2011년 5월 가동이 중단이 됐는데 4년 3개월 만에 재가동된 것이다. 3.11 대지진을 기준으로 하면 4년 5개월 만의 일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민주당 정권이 원전 제로를 선언했지만 2012년 12월 들어선 아베 2차 정권은 원전 제로 정책 폐기를 위해 하나 둘씩 준비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3년 7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원전의 안전성을 크게 강화한 새로운 안전기준을 도입했다. 이번에 첫 재가동에 들어간 센다이원전이 바로 새로운 안전 기준을 처음으로 통과한 원전이다.
새로운 원전 기준에 의해 재가동을 승인한 이후 아베 정권은 가고시마 현 주민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와 설득 작업에 돌입했다. 원전을 담당하는 경제 산업성 장관은 물론 아베 정권의 대변인인 스가요시히데 관방장관까지 센다이를 방문해 전 방위적으로 주민 설득에 나섰다.
스가 관방장관은 센다이원전 재가동이 발표된 날에도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은 에너지 정책상 중요하다. 만의 하나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가 선두에 서서 원자력 재해를 신속히 대응해 나가겠다며 불안감을 불식하는데 주력했다.
원전 재가동 반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센다이원전이 재가동되면서 나머지 원전들도 순차적으로 재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가을 에는 센다이 원전 2호기가 가동에 들어가며 다카하마 원전 3,4호기와 이카타원전 3호기 등 3개의 원전도 새로운 안전 기준에 따른 심사를 통과한 상태다.
현재 일본 내에는 수명을 다한 우너전을 제외하고 총 43기의 원전이 있는데 이 가운데 24기가 안전 심사 신청을 제출했다. 아베 정부는 새로 수립한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약 20~22%를 원전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은 상태라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향후 원전 재가동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계획대면 3.11 대지진 전과 비교해 약 3분의 2 수준으로 원전 발전량을 회복하는 셈이다.
엔저로 인한 에너지 수입가 급등 ...... 원전서 해법 찾아
아베 정권이 약 60%에 가까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전 제로 정책을 2년이 채 안 돼 폐기한 후 원전 재가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 아베노믹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베 정권은 2012년 12월 정권을 잡은 이후 이듬해 4월에 일본은행을 통해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나섰다. 달러당 엔화값은 급속히 떨어지면서 120엔대까지 폭락했다.
엔화 값 약세는 토요타, 파나소닉 등 일본 대기업들의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는 데 기여했지만 반대로 수입 물가도 크게 올려놨다.
그 중에서도 에너지 수입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랐다. 원전을 석유, 석탄발전소로 대체하면서 가뜩이나 에너지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엔저는 수입 부담을 배가시켰다.
에너지 값 급등으로 일본 기업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는 지난해 7월 닛케이비즈니스 기사를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3.11 대지진 이후 원전이 중단돼 전기요금이 급등하면서 산업 지형까지 바꿔 놓고 있다는 분석 기사였다.
엄청난 전기료에 일본 3대 제철소 가운데 하나인 고베제처로는 쇳물을 만들어 내는 고로를 없앤 자리에 화력발전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철강 생산보다 전력 생산이 더 수지타산이 맞을 정도로 전기료가 올랐다는 얘기다.
또 오사카의 한 주조 업체는 전기요금이 20% 이상 오르자 회사 문을 닫았다. 실제로 엔저 덕분에 수익이 늘어난 대기업들은 그나마 부담이 덜했지만 중소기업들은 죽을 맛이었다. 가뜩이나 소비세율 인상으로 부담이 커진 와중에 전기요금까지 오르면서 가계의 부담도 커졌다.
이는 아베 정권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아베노믹스 엔저 정책에 대해 대기업, 대도시만 수혜를 보고 중소기업과 서민은 타격을 입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원전 재가동은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와 석탄 부담을 줄여 아베노믹스의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또한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도 에너지 값급등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고민을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 비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지난해 상반기 경상수지가 33년 만에 적자를 냈다. 하지만 저유가로 한시름 덜고 있는 와중에 원전까지 재가동되면 무역수지는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에 따른 엔저 정책에 대한 여론 악화를 줄이면서 정책 유연성을 확보하게 된 점은 아베노믹스에 큰 우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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