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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유대인(Yehudim=Jew,猶太人).
◈ 그들은 어떻게 부의 역사를 만들었나
스티브 잡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와 45조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세계 최고의 갑부 워렌 버핏 또한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이 돈을 잘 벌고 또 돈을 잘 모은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왜 이들은 돈을 그렇게도 잘 버는 것일까?
유대인들은 돈을 잘 버는데 필요한 유전적 인자를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일까?
1492년 8월 스페인 세비야.
콜럼버스 선단의 신대륙 항해 준비가 한창이었다.
옆 항구에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있었다. 유대인들이었다.
이슬람 세력을 쫓아내고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은 '가톨릭 개종'과 '국외 추방' 중 양자택일하라고 유대인을 윽박질렀다.
명분은 종교문제였지만 속셈은 유대인 재산 몰수였다. 유대인 17만 명이 스페인을 떠났다.
이후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들여온 막대한 자원으로 외형을 넓혀갔지만 속으론 골병들었다.
유대인들이 쥐고 있던 금융·유통망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결국 유대인들이 떠난 지 반세기 만인 1557년 첫 파산 선언
을 하는 등 국운이 급격히 기울었다.
'유대인 이야기'는 구약성서 시대부터 현대까지 유대인에 초점을 맞춰 세계경제사의 흐름을 분석한다.
KOTRA 직원으로 정년퇴직하기까지 30여 년간 세계경제 현장에서 유대인들의 활약을 목격한 저자는 10년이 걸려 책을 완성하면서
'친유대적도 반유대적도 아닌 있는 그대로 그들의 장단점을 보고자 애썼다.'고 밝혔다.
책의 주장은 서구 역사에서 부와 패권의 흐름은 유대인의 이동사와 일치한다는 것.
로마제국에 대항했다가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인은 유럽 국가들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들이었다.
13세기 영국, 14세기 프랑스, 15세기 스페인,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차례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그때그때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으로
이주했고, 그 지역 경제를 부흥시켰다. 반대로 그들이 떠난 곳엔 경제 침체의 그늘이 짙어졌다.
현지인들과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내세운 유대인들은 박해받았지만 문맹이 절대다수이던 유럽에서
유일하게 대부분이 글을 읽고 셈을 할 줄 아는 민족이기도 했다.
멀쩡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기에 환전업·대부업·전당업 등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추방당할 것에 대비해 늘 재산을 현찰과 보석, 부동산 등으로 분산해 놓는 포트폴리오, 세계 곳곳의 유대인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유통,
'돈은 버는 것이 아니라 불리는 것'이라는 경제관념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생존과 경제적 번영을 가능케 했다.
스페인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정착한 곳은 벨기에의 앤트워프.
화폐와 금을 소지하지 못하고 황급히 보석만 챙겨온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보석유통업을 일으켰다.
이어 암스테르담으로 옮긴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워 향료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인도·동남아·중국·일본·서인도제도의 무역, 아프리카 노예무역도 주도했다.
청교도혁명을 일으킨 크롬웰은 아예 런던의 일정 면적을 유대인들을 위한 자유경제지구로 지정해줬다.
'더 시티'의 원조다. 유대인들에게 미국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의 땅이었다.
바빌론 시절 고대 중국과 비단 교역에 나섰고 소금 정제업, 다이아몬드 가공과 유통 독점, 석유산업에 이어 현대 금융업을 장악하고,
중세시대 '궁정 유대인'처럼 미국의 재무장관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줄줄이 배출하는 유대인 파워는 현대로 올수록 더욱 압도적이다.
◈ 유대인들은 정말 대단한 민족인 것 같다.-위키백과에서 발췌한 내용.
오늘날 유다인은 미국, 유럽 등지에 살면서 막강한 영향과 세력을 발휘하고 있다.
유다인들은 금융업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영국 청교도 혁명 때 혁명파 수장 올리버 크롬웰에게 자금을 지원해 영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명예 혁명으로 윌리엄 3세가 오르자 유다인들은 윌리엄 3세에게 군자금을 지원해 화폐발행권 이권을 얻어냈고 1694년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했다.
유다인들은 이후에도 영국에 막강한 영향을 끼쳐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직접 수상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유다인은 전유럽의 금력을 바탕으로 막강해지기 시작했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다인 국제금융업자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 예로 가문을 크게 일으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후 유럽 전역에 진출해 막강한 돈과 금융을 업고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첫째 아들 암셸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둘째 아들 잘로몬 로스차일드는 오스트리아 빈,
셋째 아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영국 런던,
넷째 아들 카를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 나폴리,
다섯째 아들 제임스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프랑스 파리에 각각 진출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아들들 중 셋째 아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각 동맹국 정부에 1억 파운드씩 빌려주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75년 수에즈 운하 건설에도 융자해주고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영국 정부에 영향을 주어 유다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을 유도하기도 했다.
유럽 전역에 반유다주의가 휩쓸자 로스차일드 가문은 상인 스펜서 모건과 그의 아들이자 훗날 모건 은행을 설립하는 존 피어폰 모건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유다인들은 할리우드 영화 등 영화 산업을 이용해 백인 중심의 세계로 바꾸었다.
초기 8대 할리우드 영화사의 우두머리가 모두 유다인이었다.
워너브라더스, 메트로-골드윈-메이어, 파라마운트 픽처스, 20세기 폭스, 유니버설 스튜디오, 콜럼비아 픽처스 등 모두 유다인들이 설립한 영화사들이다.
1930년대까지 당시 영화시장을 독접하던 미국 영화사들이 모두 유다인 소유였다.
미국 역사상 최대 재벌 중 하나였던 존 D. 록펠러도 유다인과 장사 수단이 비슷해 유다인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대 신문인 LA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도 유다인 소유이거나 유다인 운영 관리 회사이다.
세계적인 통신사 UPI, AP, AFP 역시 유다인 소유이다.
영국 최대 통신사이자 세계 3대 통신사인 로이터 통신 역시 유다인 파울 율리우스 로이터가 세운 것이며,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 시트로앵의 창시자 앙드레 시트로앵, 이탈리아의 컴퓨터 회사 올리베티의 창시자 카밀로 올리베티 역시 유다인이다.
미국 3대 TV NBC, ABC, CBS-TV와 영국의 유명한 공영방송 BBC도 유다인의 세력에 있다.
세계적 주간지 <뉴스위크>와 경제 전문기 <더 월스트리트 저널> 등 수많은 신문, 방송, 잡지 등을 유다인이 보유하고 있다.
FRB 회장의 4회나 맡으며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도 유다인이다.
전임 세계은행의 총재 폴 울포위츠와 현 총재 겨주기 로버트 졸릭, 국제통화기금의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프랑스 재무장관 등도 유다인이다.
세계적 커피 회사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 헤지펀드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 인텔의 창립자 엔디 글로브, 델의 창업자 마이클 델, 러시아의 억만장자 로만 아브라모비치, 옛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러시아의 미디어 재벌이던 보리스 베레좁스키, 유명한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시무어, 영국의 광고재벌 찰스 사치, 미국의 스포츠재벌 랜디 러너와 맬컴 글레이저, 로버트 크래프트, 뉴욕 시장이자 블룸버그 L.P.의 창립자 마이클 블룸버그,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적 거물 인사들도 모두 유다인이다.
퓰리처상을 제정한 신문왕 조셉 퓰리처 역시 헝가리 출신 유다인계이다.
세계적인 인공어 에스페란토를 창시한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 박사도 유다인이다.
<뉴욕타임스>의 최고논설위원 월터 리프만도 유다인이다.
무엇보다도 노벨상을 받은 유다인이 현재까지 무려 179명에 달한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와 펠릭스 멘델스존,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자니 클레그, 레오니트 크로이처 같은 음악가도 유다인이다.
막스 리버만,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와 러시아 혁명의 레온 트로츠키,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혁명가도 유다인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조 리버먼이 부통령으로 지명되기도 했고 뉴질랜드의 총리 존 키도 유다인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드 아들러, 막스 아이팅곤과 대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도 유다인이다.
작가 안나 제거스와 야코프 바서만, 프란츠 카프카, 전신학자 막스 라빈, 수학자 에밀 뇌터와 헤르만 민코프스키, 레오폴트 크로네커, 게오르크 칸토어, 생리학자 핸스 애돌프 크리브스, 화학자 크리츠 하버,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소련의 비밀경찰이던 겐리흐 야고다 등도 모두 유다인이다.
아이작 스턴이나 헨리 키신저, 오토 릴리엔탈, 찰스 린드버그, 아놀드 쇤베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란츠 오펜하이머, 레너드 번스타인, 스타니스와프 울람, 리바이 스트라우스 모두 유다인이다.
유다인과 결혼하여 개종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스티븐 스필버그, 로만 폴란스키 등 연예계에서도 유다인의 힘은 막강하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축구감독을 역임했던 호세 페케르만 역시 유다인으로 아르헨티나가 원년 월드컵 준우승을 포함하여 월드컵 우승 2회, 준우승 2회에 빛나는 축구의 명가인 관계로 월드컵 무대에서도 유태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현재 미국 유명대학 재학 유다인 비율이 하버드 대학교 30%, 예일 대학교 28%, 보스턴 대학교 24%로 엄청나다.
이외에도 로버트 오펜하이머, 바뤼흐 스피노자, 발터 베냐민, 노암 촘스키, 에리히 프롬, 마르크 샤갈, 스티븐 발머 등도 모두 유다인이다.
미국 100대 기업의 40%가 모두 유다인의 소유이다.
세계 5대 메이저 식량 회사 중 3개가, 세계 7대 슈퍼메이저 석유 회사 중 6개가 유다인의 소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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