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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81년]중공업 입국을 이룬 삼성조선의 조우동 사장님의 경영철학

루지에나 2013. 4. 3. 13:27

 

 경영철학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 창출 
·인류사회 공헌 
 

조우동 삼성조선 사장은 삼성의 기계사업군을 대표하는 핵심 경영인으로 손꼽힌다. 삼성조선에 이어 삼성중공업 회장을 두 번 역임하면서 ‘중공업 입국’을 이끌었다.  
1974년 ‘세계 최고의 종합기계업체’를 목표로 출범한 삼성조선은 현재 삼성중공업으로 발전해 삼성그룹의 주력 기업이자 매출 규모 2조 원에 육박하는 대형 중공업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조우동 사장은 석유파동으로 인해 국내외 경기가 어려울 당시 과감한 투자로 두 조선소를 인수해 삼성조선의 기반을 닦았다. 또한 1983년에는 삼성중공업, 대성중공업, 삼성조선 등 3사를 통합해 삼성중공업으로 변모시켰다.  
삼성중공업이 종합 중공업 메이커로 발전한 과정에는 조우동 사장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삼성조선 설립 초창기는 흡사 미국의 서부 개척사를 방불케 하는 도전정신과 모험정신이 뒷받침된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재벌들의 조선업 진출이 본격화되던 시기, 삼성 계열의 고려조선은 1977년 진로 계열의 우진조선을 인수하여 덩치를 키우면서 삼성조선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삼성조선은 1978년 조우동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중공업 입국’이라는 국가적 여망에 맞게 본격적으로 조선업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적자에 허덕이던 고려조선과 우진조선을 인수한 것은 조우동 사장의 선견지명의 발현이었다. 당시 석유파동으로 국내외적으로 경기불황인 가운데 적자 회사를 인수하는 힘든 결정이지만 조우동 사장은 조선업계의 장기적인 설계도 속에서 인수를 단행, 이를 기반으로 더욱더 확장해나간다.  
“1977년 처음 거제도 고현 조선소 건설현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에는 모두가 영화에서나 보았던 서부 개척민들과 다름없었다. 몇몇 가건물이 지어져 사무실과 부대시설로 이용되고 있었을 뿐 배를 만드는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업장은 겨우 뼈대만 갖추고 있었다. 며칠 동안 서부로 달려가 먹을 물조차 제대로 없는 황량한 벌판을 만난 서부 개척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삼성중공업 20년사)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는 5년여동안 삼성은 삼성중공업, 삼성조선, 대성중공업 등 중공업계 3사를 통합해 경영정상화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각종 선박이 세계적인 전문지에 매년 세계 최우수 선박으로 선정되어 세계적으로 선박건조기술을 공인받는 계기가 된다.

또한 1980년대 중반 독자 모델로 개발한 굴삭기가 우수 기계로 각광받으며, 삼성중공업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 종합 중공업 메이커로 성장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삼성중공업만의 공격경영을 시작한다. 미국, 인도, 일본, 홍콩, 싱가포르, 그리스, 벨기에 등 신시장을 개척하면서 최대 물량을 수주받았고, 미국에 이어 중국에 굴삭기를 수출, 삼성중장비의 해외시장은 이로써 5대양 6대주로 확대되었다.

 

 

 조우동 사장은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의 경영이념을 근본으로 경영해왔다. 이는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고객과 함께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는 3대 행동지침에 따라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21세기 초일류 기업을 추구하였다.  
이를 위해 능력 있고 성실한 사원들의 자기 계발과 성취 욕구를 충족시키고 우수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1년 과정의 사내 기술대학을 운영하였다. 사내 기술대학은 창원공장 내의 기계기술대학과 거제조선소의 조선해양기술대학 등 2개가 운영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사 간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공정한 노사관계를 정립하고 서로 협력하여 생산성 향상과 근로 조건의 유지 개선에 노력,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기업경영’을 구현하였다. 이런 노사문화는 나아가 산업 민주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삼성조선은 업계 최고로 사원들의 복리후생에 앞선 기업으로 평가된다. 사원들의 자녀를 위한 장학제도는 업계 최고의 복리후생 수준을 실현한다는 방침에 따라 학자금 지급액을 현실화하였다. 거기에 실질적으로 부양의 의무가 있는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수혜 대상자를 확대, 실시하였다.

 

 

 국내 업계 최고의 사원 복리후생에 앞장선 데는 황무지 같은 땅에서 도전정신으로 일하는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여긴 조우동 사장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가정이 편안해야 기업에 매진할 수 있다는 평소 신념대로 사원들의 숙소부터 시작해 자녀교육까지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탕으로 사원 복리후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중공업 입국이라는 국가적 여망에서 시작한 삼성조선은 글로벌 경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였다. 황무지 같은 땅에서 세계 최고의 종합기계업체로 성장한 기업의 저력은 모든 사원들의 도전정신과 진정한 노사화합에서 시작되었다. 삼성조선을 시작으로 글로벌 경영까지 이어진 조우동 사장의 공적은 동탑·은탑산업훈장,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삼성중공업은 1974년 설립된 종합 중공업 메이커이다. 삼성중공업의 전신인 삼성조선은 1977년 4월 경남 거제시 장평리 일대에 15만 톤급 조선소를 건설 중이던 우진조선을 인수하면서 탄생하였다. 1978년 창원공장을 완공, 조선소의 핵심 시설인 길이 140m, 너비 46m, 깊이 11m, 선박 건조능력 6만 5,000톤 규모의 제1호 도크를 완성하였다. 1979년 4월에 호주 해운회사인 벌크 십(BULK SHIP)사로부터 2,100톤급 석유 시추 보급선 2척을 계약함으로써 해외 수주의 첫발을 내디뎠다. 1983년 대성중공업(주)을 흡수·합병하였으며, 그해 한국중공업 창원 중장비공장을 인수하였다. 삼성중공업, 대성중공업, 삼성조선 등 3사가 통합된 삼성중공업은 이후 급성장을 거듭한다. 1999년 4월에 삼성 계열사로 지정, 12월에 선박용 엔진사업 독립법인을 설립하였으며, 발전설비 사업부문을 한국중공업에 매각하였다. 2000년 3월 디지털 컨트롤 시스템 사업에 진출, 2001년 3월에는 안전·보건경영에 관한 국제규격인 OHSAS(Occupational Health & Safety Assessment Series) 18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2002년 기준 총자산 4조 7,314억 원, 매출액 4조 2,638억 원, 당기순이익 1,065억 원이다. 경상남도 거제시에 조선소가 있으며, 해외 지점은 13개가 있다. 

 

출처 : KMA 한국능률협회 블로그
글쓴이 : KM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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