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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 조작 미쓰비시, 닛산 품으로

루지에나 2016. 7. 4. 07:34

연비 조작 미쓰비시, 닛산 품으로

 

 

 

2000년대 2번의 리콜 은폐 사태를 겪으며 그룹의 도움을 받아 겨우 회생했던 미쓰비시 자동차가 다시 한 번 신뢰 문제를 일으켰다. 연비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에도 그룹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미쓰비시 차는 닛산 자동차에 매각되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덩치를 키워 가려는 르노 닛산 그룹과 그룹 이미지를 추락시키며 골칫덩어리로 전략한 자동차 사업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하려는 미쓰비시 그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불과 한 달도 안 돼 빠른 속도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1970년 미쓰비시그룹의 간판 기업 미쓰비시 공업의 자동차 사업부가 분사해 출범했다. 미쓰비시 차는 경차와 SUV 분야에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8개의 승용차(경차포함) 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지난해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은 2% 정도로 8개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낮다.

그러나 기술력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에 동남아와 경차 시장에서 고객을 확보해 나갔다. 그러던 미쓰비시가 2000년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과거 리콜 사실을 조직적으로 숨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2004년 또 다시 리콜 은폐 사건이 들통이 나면서 존폐의 기로에 섰다.

두 번의 리콜 은폐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미쓰비시 차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제휴관계를 4년 만에 청산하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이때 미쓰비시차를 살린 것은 미쓰비시그룹 내 핵심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미쓰비시 상사, 미쓰비시 UFJ 도쿄은행이다.

이들은 미쓰비시차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지원을 결정했고 덕분에 미쓰비시 차는 기사회생했다. 이후 미쓰비시 차는 차종을 대폭 줄이고 해외 공장 매각, 통폐합 등뼈를 깎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쳤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공장을 전면 철수하고 동남아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오랜 터널을 지나 다시 도약을 준비하고 있던 미쓰비시 차가 최근 다시 한 번 일본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다. 이번에는 연비를 조작한 것이 들통 났다. 아이카와 데츠오 사장은 지난 420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토교통성에 제출한 연비 테스트 데이터에 실제보다 연비를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한 부정한 조작이 발견됐다 고 털어놨다.

 

 

또 다시 비도덕 오명 쓴 미쓰비시 차

연비 조작에 연루된 차량은 자체 생산한 eK 왜건과 eK 스페이스 2468000대 등 총 626000대에 달했다. 미쓰비시 차는 이들 차종의 연비가 실제보다 5~10% 정도 좋게 보이도록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실토했다.

불과 10년 전에 조직적인 은폐로 죽다 살아난 미쓰비시가 또 다시 조작 사건에 휘말리자 미쓰비시그룹과 일본 재계는 충격에 빠졌다. 재계에서는 미쓰비시 차의 기업문화에 근본적인 문제가 잇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조작에 연루된 몇몇 직원의 문제를 넘어 근본적인 병폐가 조직 내에 뿌리 깊게 박혀 잇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쓰비시 차는 경차 시장에서 1,2위를 달리는 다이하츠와 스즈키를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펼쳐 왔다. 경차 시장의 유일무이한 경쟁력은 연비다. 일본은 자동차 판매량 중 경차가 40%를 점유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 자동차 회사들은 연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미쓰비시 차는 다이하츠와 스즈키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졌지만 경영진의 연미 개선 목표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경영진의 무리한 목표치를 도저히 맞출 수 없게 된 담당자들이 조작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담당자들이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계속 제시하고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영진이 몰랐다는 이유 하나로 책임을 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연비 조작 사건도 미쓰비시 차가 자체 조사하면서 드러난 게 아니라 미쓰비시 차에 경차 생산을 위탁했던 닛산 담당자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는 과거 생사기로에 설 만큼 비도덕적인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내부 통제와 자정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룹이 버린 미쓰비시 거둔 르노 닛산의 야심

연비 조작 사건이 밝혀진 이후 미쓰비시 차의 주가는 바닥없이 추락했다.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첫 기자회견에서 4종의 연비 조작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조사를 하면 할수록 더 일찍부터 조직적으로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계속 쏟아졌다.

미쓰비시 차가 또 다시 위기에 처하자 세간의 관심은 다시 미쓰비시 그룹으로 쏠렸다. 미쓰비시 차의 경영 상태가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연비 조작 사건이 모두 밝혀진 이후 리콜 비용과 보상비용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조직의 미쓰비시라고 불릴 만큼 그룹 계열사 간 강력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미쓰비시그룹이 미쓰비시 차가 몰락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 지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은 512일 일본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할 또 하나의 발표가 나왔다. 닛산이 미쓰비시 차를 인수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인수 발표 전까지 미쓰비시 차의 최대 주주는 지분 약 20%를 가진 미쓰비시 중공업이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2000년대 리콜 은폐 사건으로 미쓰비시 차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규모 지원에 나서 최대 주주가 됐다.

그런데 닛산이 2000억 엔이 넘는 돈을 투입해 제 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미쓰비시 차 지분 34%를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미쓰비시 그룹이 과거 리콜 은폐에 이어 연비 조작까지 벌인 미쓰비시 차를 바꾸기 위해서는 충격적인 요법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닛산에 경영권을 넘겨 버린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미쓰비시 차를 지원할 것으로 봤던 세간의 분석을 뛰어넘는 강력한 조치가 취해진 셈이다.

닛산이 향후 대규모 리콜 비용이나 소비자 보상 등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미쓰비시 차를 인수한 것은 나름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과 브랜드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닛산은 이미 미쓰비시 차와 경차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해 협력하고 있다. 이번에 연비조작이 밝혀진 경차 중 2종은 닛산 브랜드를 달고 팔린 것이다. 닛산이 미쓰비시 차의 내부 기술력이나 조직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닛산은 미쓰비시 차를 인수해 경차 시장을 확대하고 무엇보다 닛산이 취약한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잇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토요타, 폭스바겐, GM을 넘어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다방면으로 뛰고 있는 닛산 입장에서는 미쓰비시 차가 나름대로 신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잘 알려져 잇다시피 닛산의 최대 주주는 프랑스의 르노닛산 그룹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960만 대(지난해 기준)까지 늘어나게 됐다. 세계 3위인 GM(984만 대)은 물론 2위인 독일 폭스바겐(993만 대)의 턱밑까지 쫓아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