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나를 이긴 자가 가장 강하다.(엄홍길 대장)

루지에나 2017. 5. 16. 15:09

나를 이긴 자가 가장 강하다.

산악인 엄 홍길 대장

 

 

히말라야는 살인적인 추위와 극심한 체력 소모, 방향을 읽어낼 수 없는 새까만 어둠,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눈사태 등 예고된 고통부터 예기치 않은 공포까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산악인 엄 홍길 대장은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순간에 가장 강해졌다. 그리고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 최초의 이 산의 16좌를 모두 오름으로써 희망과 전설이 됐다. 웅장한 산 앞에서는 철학도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산을 오르는 자는 산의 일부가 되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이식하는 완전한 조재가 되어갈 뿐이다. 지난 331일 서울 동호로에 위치한 엄 홍길 휴먼재단에서 엄 홍길 대장을 만났다.

 

산은 그대로 있다. 언제나 사람만이 갈등하고 동요할 뿐이다. 미움, 질투, 치욕, 불안, 고독, 연민, 사랑, 열정, 희망,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 이름 붙이고 속박되어 웃음이 되기도 하고 눈물이 되기도 하는 사람의 산물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평생 그렇게 사는 것밖에 모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대자연을 맞닥뜨렸을 때 울컥 터져 나오는 심장의 벅참을 과연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가까이를 향해 우뚝 뻗어있는 산, 낮고 밤이 수없이 거듭되어 온 인류의 역사가 축적된 산, 그 긴 시간을 관통하고 그로써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산 앞에서 말이다.

산은 침묵한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 상승과 하강,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에 대해 사람의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오만을 버리고 고행의 길을 걷다.

고행승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산을 올라가야 합니다. 산을 업신여긴다면 산은 받아주지 않습니다. 오만은 곧 욕심을 부르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평정심은 무너집니다. 날씨가 안 좋은데도 자기 주관대로 해석해 밀어붙이다보면 결국 사고가 나고 생명을 잃는 불행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정상에 가까워지거나 쉽게 일이 풀리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확 마음이 바뀌기도 하는 데 사고 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 원인은 마음의 오만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비워내야 채울 수 있습니다.

세계 최추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모두 오른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다. 히말라야는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릴 만큼 인간을 잘 받아주지 않는 험난한 산이다. 이곳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죽음과 마주하는 극한 순간의 연속이며 생에 대한 묵묵한 헌신이 필요하다. 엄 홍길 대장이 이 기나긴 원장을 시작하게 된 것은 현재 상황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도전정신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었다. 그에게 이 두 가지 마음은 자신의 생을 붙드는 강력한 로프가 되어 주었다.

2000731K2를 성공하면서 14좌 완등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살아남은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지난 세월의 과정들을 생각하면서 살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위험한 도전을 안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죠.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목표가 없어지니까 허탈해지더군요. 온몸을 불사르는 열정과 혼을 쏟아 부었는데 다음이 없었으니까요. 우리 삶에 희망이나 도전이 없다면 얼마나 무의미할까요. 그럭 깨닫자 성공을 이루었다 해서 끝이 아니다. 성공은 또 다른 더 큰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머지 2개 봉우리에 대한 열망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는 중에도 머릿속으로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결국 인생이란 매 순간순간 도전하는 연속이 아닐까요.

1985년부터 시작된 도전은 22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무릅써 2000K2를 끝으로 14좌에 오르는 대업을 이루었지만 엄 대장은 오히려 허기를 느꼈고 얄룽캉과 로체샤르 위성봉마저 올라 16좌를 완등 하겠다는 열망이 커졌다.

마지막 봉우리에 다다를수록 그 산은 간절한 곳이고 해내야 하는 곳이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약속이 되었다. 하지만 명성 그대로 쉬운 산이 아니었다. 엄 대장의 신념과 의지를 시험하는 좌절들이 그를 깊은 늪으로 빠트리기도 했다.

 

 

절망하지 않는다면 끝은 없다.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로프에 의지해 절벽 같은 산을 오를 때 예기치 않은 눈사태를 맞는다고 상상해보라. 저 앞에서 가파른 경사면을 타고 쏟아져내려오는 눈사태는 한얀 옷자락을 휘날리는 죽음의 신령처럼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온몸을 덮친다. 간신히 눈을 헤치고 몸을 일으켜도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지새워야 하는 눈보라 속의 어둠이 찾아든다. 위를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게 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끝도 없이 떨어질 듯 아찔한 긴장감 속에 밤사이 또 모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해 온다. 이것은 추위나 어둠과는 또 다른 차원의 숨 막히는 공포다. 엄 대장은 동상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이 모든 공포를 극복해냈다.

특히 안나프르나(8091m)는 상처가 많은 산이었다. 1997년 등정 시 혈육 같은 셰르파가 목숨을 잃었고 1998년에 다시 찾았을 때는 엄 대장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추락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리는 조각조각 부러지고 발목은 180도 돌아가 완전히 덜렁덜렁했다. 그 상태로 진통제도 없이 고통을 이겨내며 7600m 높이에서 4500m까지 2 3일 동안 한발로 기어 내려왔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설명이 안 되는 기적보다 더한 상황이었다.

결국 엄 대장은 네팔을 거쳐 한국에 호송돼 쇠를 박는 대수술을 했고 의사는 다리가 낳는다. 한들 걸어 다니는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끝이라는 절망감이 무자비하게 가슴을 찢어놓는 순간이었다. 온갖 고생 속에서도 마음을 굳건히 부여잡아주던 꿈의 덩어리가 끊임없이 눈물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무리치료와 재활을 통해 무릎이 조금씩 구부러지기 시작하자 그는 제일 먼저 다시 산에 올랐다.

보통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일에 목숨을 걸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히말라야에서는 순간순간 한 걸음이 이승과 저승을 결정합니다. 산에 딱 들어가면서부터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죠. 한 순간도 어영부영 발을 내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안한 요소들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만큼 혹독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할까요. 이런 경험을 안 해본 사람이라면 이 고통을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겨내야 하나 그저 막연하겠지만 많은 경험을 해본 사람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요. 이 시련을 넘어섰을 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요.

 

 

간절히 바라고 자신을 뛰어넘어라.

히말라야 16좌 완등의 마지막 목표물인 로체샤르(8400m)는 죽음의 지대라 불리는 곳이었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이 펼쳐지고 그중 3분의 1은 빙벽이다. 게다가 2001, 2003, 2006년 실패를 거듭한 후 2007년 다시 찾은 산이기에 이번만큼은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커져 갔다. 하지만 무수한 실패로 인해 엄 대장은 강해질 대로 강해져 있었다. 더욱이 죽음의 끝에서 회생한 이후 마음을 다스리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에 한층 가까워진 터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엄청난 고통의 과정들을 겪은 이후로 웬만한 일들은 초연해지더군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심상사성은 어떤 일에 대해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또 자승최강은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하다는 의미로 항상 가슴속에 새기고 있는 말입니다.

네 번째 도전에서도 변화무쌍한 날씨는 길을 쉬이 열어주지 않았고 셰르파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엄 대장은 막판까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을 옮겼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고 앞을 내다보면 거기엔 마음 깊숙한 곳에 함께하는 동료들과 오래 품어온 간절한 꿈이 먼저 저만치 가며 손짓하는 듯했다. 그는 그것들이 멀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그 뒤를 따랐다. 그는 그것들이 멀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드디어 2007531일 정상을 향해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 엄 대장에서 로체샤르의 신이 손을 내밀었다. 이로써 엄 대장은 불가능의 벽 앞에서 총 38번을 도전해 16개봉을 모두 성공했다.

 

 

엄 홍길 휴먼재단, 산과의 약속

저는 산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생각, 논리에 대한 오만은 산에서 통하지 않아요. 인간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죠. 그래서 16좌를 성공해 살아서 돌아가게 되면 지금까지 나를 받쳐주고 이끌어준 모든 감사한 일들에 보답해야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렇게 해서 2008년 설립한 것이 엄 홍길 휴먼재단이다. 엄 대장은 이 사업을 통해 히말라야 16개 봉우리를 오르고 살아남은 보답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16개 학교를 짓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인생의 제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첫 번째 휴먼스쿨은 2010년 에베레스트 길목에 위치한 해발 4060m 팡보체 마을에 세워졌다. 1호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만큼 당연히 그곳에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지역은 1985년 히말라야 원정 시 첫 번째 도전한 산인 에베레스트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숨진 셰파르의 고향으로 어머니와 유족이 살고 있다. 먼저 간 동료를 생각하면서 품어 온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현재까지 휴먼스쿨은 10번째 기공식까지 마치고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산을 다니다보면 거의 오지잖아요. 산간 마을 사람들, 어린이들의 삶을 살펴보면 모든 의식주가 열악하더군요. 어린이들은 배움의 기회도 없고 시설도 없어요. 그런데 교육만이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잖아요. 물질적 지원은 몇 달 걸려 다 쓰면 그만이지만 교육은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끼치죠. 그래서 어린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학교를 지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산이 저에게 깨우침을 주신 거죠.

엄 홍길 휴먼재단은 해외 지원 사업 외에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재단 회원 및 청소년들과의 정기 등산이다. 매달 한 번씩 산에 올라 인간의 원초적 고향인 자연의 품을 느끼게 하고 모범생들을 선정해 네팔 휴먼스쿨 준공식에 함께 가는 등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에 힘쓰고 있다.

엄 대장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자연이 아이들의 호연지기를 길러줄 수 있다고 믿으며 놀랍게도 반항심 넘치던 아이들의 산행이 거듭될수록 언어순화를 비롯해 양보와 배려, 유대감이 강화되는 것을 실제로 목격하고 있다.

살다보면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미련 없이 떠날 것인지, 끝까지 싸워 자신을 지켜낼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를 눌러 앉히는 것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나를 망쳐버리는 것도 나를 지탱하게 하는 것도 모두 나다. 모드 내 자유이고 내 선택의 문제다. 엄 홍길 대장은 수 십 년 동안 산에 오른 인생을 통해 자신의 길을 선책하고 스스로를 증명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그를 뒤따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꿈에 길을 밝혀주고 있다.